봉불(奉佛)의 의의(意義)-서성로 봉불식 법문

오늘 법당(()())에 모신 저 두렷한 법신불상(()()()())은 우주만유(()()()())가 다 가지고 있는 본성(()())자리요, 우리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천진불(()()())인 심불(()())의 표상(()())인 것이다.

예로부터 이 자리를 불가(()())에서는「청정법신불(()()()()())」이라 일렀고 유가(()())에서는「무극(()()) 또는 태극(()())」이라고 하였으며 선가(()())에서는「도(()) 또는 자연(()())」이라 일렀고 기독교(()()())에서는「하나님」이라 일러 왔던 것이다.

비록 각종각파(()()()())에서 그 이름은 각각(()()) 달리 불러왔지마는 진리(()())의 구경(()())을 통(())하고 보면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인 저 법신불일원상(()()()()()())의 진리(()())에 벗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대종사(()()())님께서는 병진(()()) 3월 26일 대각(()())을 이루시고 일원대도(()()()())를 크게 드러내시어 새 시대(()()) 새 종교(()())의 종지(()())로 삼으셨던 것이다.

이에 우리 교당(()())이나 가정(()())에 저 법신불일원상(()()()()()())을 봉안(()())하는 것은 한낱 형식적(()()())인 장엄(()())이나 한때의 의식(()())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와 같이 두렷한 진리(()()), 저와 같이 원만(()滿())한 부처님을 잘 받들어 그대로 믿고 그대로 닮아서 무궁(()())한 혜복(()())을 갖추어 생불(()())이 되고 활불(()())이 되는데 그 목적(()())과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와 같이 두렷한 진리(()())와 원만(()滿())한 부처님을 믿고 받들어 그대로 닮아가는 길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시불(()())하는 것이다. 우리가 봉불(()())을 하는 것은 교당(()())이나 가정(()())에 법신불(()()())을 봉안(()())하는 것만 아니라 곧 각자각자(()()()())의 육신교당(()()()())에 늘 부처님을 모시자는 것이다. 보라! 사람이 현명(()())한 부모형제(()()()())나 위대(()())한 스승이나 바른 동지(()())를 가까이 모시고 사는 분과 아무도 모신 바가 없이 제 홀로 자행자지(()()()())하는 사람의 그 언행(()())과 처사(()())가 어떠하며 그 심법(()())과 인격(()())이 어떠하던가.

그러므로 고금(()())의 모든 성자(()())나 위인달사(()()()())는 다 그 마음 속에 진리(()())를 모셨고 위대(()())한 스승을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경(())에 이르시기를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부(()())이신 석가세존(()()()())께서도 과거(()()) 무량아승지겁(()()()()()())을 통(())해서 무량천만불소(()()()()()())의 무수(()())한 부처님을 모시고 한 분도 빠짐없이 공양승사(()()()())하시는 일에 하루도 헛되이 지내신 바가 없었노라고 하셨다.

대성지성문선왕(()()()()()()())의 존호(()())를 받으신 공자(()())께서도 항상(()()) 요순(()())을 조종(()())으로 모시고 문무(()())를 법(()) 받으시어 주공(()())을 스스로 모시어 꿈에라도 행여 못 뵈올까 염려(()())하셨다고 한다. 또한 문왕(()()) 같은 분은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셨고, 근대 위인(()()()())이라 일컫는 인도(()())의 네루수상(()()) 같은 분은 성(()) 간디를 그 마음에 늘 모시고 살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밖에도 위대(()())한 인물(()())은 다 그 마음에 반드시 모시는 분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모시는 대상(()())과 모시는 생활(()())에 있어서 아직 진리(()())의 전체(()())를 확실(()())히 더우잡지 못한 처지(()())에서는 처음부터 진리(()())만 의지(()())하려면 거리(()())가 있는 것 같고 또는 막연(()())한 느낌도 없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의 말씀에도『성인(()())이 세상에 나시기 전(())에는 도(())가 천지(()())에 있고 성인(()())이 세상(()())에 나신 후(())에는 도(())가 그 성인(()())에게 있으며 성인(()())이 가신 뒤에는 도(())가 경(())에 있다.』하여 진리(()())와 성인(()())을 따로 보지 않으시고 항상(()()) 그 진리(()()), 그 성인(()())을 함께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제자(()()())는 자나깨나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나닐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법(()) 받고 닮아갈 수 있도록 저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그 진리(()())를 바로 이어 받으신 스승님들을 우리 마음 속에 깊이 모시고 살아간다면 저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둘이 아닐 것이요, 그 스승님과 내가 둘이 아닌 생활(()())로 일관(()())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교단(()()) 창립(()()) 당시(()()) 내외(()())의 모든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대종사(()()())님께서는 한때 봉래산 석두암(()()()()()())에 격거(()())하신 바가 있었고, 정산종사(()()()())께서는 월명암(()()())에 수삼년간(()()()()) 계신 적이 있었다. 그 동안에 때로는 사나운 눈보라도 휘몰아쳤을 것이요, 모진 비바람도 있었을 것이며, 주위(()())의 오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산종사(()()()())께서는 항상(()()) 법신불(()()())과 대종사(()()())님을 따로이 생각지 않으시고 오직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모시고 싶은 지극(()())한 정성(()())이 날을 더하여 험산준령(()()()()) 십여리(()()())를 하루도 빼지 않으시고 이해(()())없는 이목(()())을 피(())해 가시면서 밤마다 석두암(()()())에 내왕(()())하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열반 직전(()()()())에까지도 자주 말씀하시기를 대종사(()()())님을 뵙고 모신 이래(()()) 나는 일분일각(()()()())도 대종사(()()())님을 잊은 적이 없고 계미(()()) 6월 1일 대종사(()()())님의 색신(()())은 떠나셨지마는 꿈에서도 그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셨다.

대종사(()()())님을 받들고 모신 그 마음 그 정성(()())이 쌓이고 뭉쳐서 필경(()())은 대종사(()()())님의 마음이 곧 정산종사(()()()())의 마음이 되셨고, 대종사(()()())님의 경륜(()())과 심법(()())이 곧 정산종사(()()()())의 경륜(()())과 심법(()())이 되었던 것이다. 연등불(()()())을 비롯하여 무량(()()) 천만불소(()()()())의 무수(()())한 부처님을 모신 석가세존(()()()())은 곧 연등불(()()())에 다름이 없는 부처님이 되시어 후일(()()) 주세불(()()())로서 천백억(()()()) 화신불(()()())을 나투셨던 것이요. 요순(()())과 문무주공(()()()())을 모신 공자(()())님은 큰 요순 문무 주공(()()()()()())에 다름이 없는 성자(()())가 되어 춘추대의(()()()())를 바로 잡으시고 후일(()()) 대성지성(()()()()) 문선왕(()()())이라는 최고(()())의 존호(()())를 받으셨던 것이다.

또한 일원(()())의 진리(()())를 대각(()())하시고 주소일념(()()()()) 허공법계(()()()())와 우주만유(()()()())를 다 부처로 모시고서 일체중생(()()()())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하신 우리 대종사(()()())님께서는 곧 일원(()())의 진리(()())와 똑같은 부처님이 되셨고, 만생령(()()())의 구주(()())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시는 사람, 모시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다. 시불(()())! 모실 시자, 부처 불자이니,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아침부터 저녁가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꿈에도 모시고, 낮에도 모시고, 자나깨나 진리(()())와 스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고 보면 부처가 곧 나요, 내가 곧 부처가 될 것이며, 내가 곧 그 스승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생불(()())이 되는 것이다. 봉불(()())은 곧 시불(()())을 하자는 것이요, 시불(()())은 곧 생불(()())이 되자는 것이다. 보라! 글씨 잘 쓰는 명필(()())을 모시고 글씨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 명필(()())을 닮아서 필경(()())에는 명필(()())이 되지 않던가. 청정법신불(()()()()())을 모시고 또 법(())있는 스승님을 모시고서 살아가노라면 닮아가게 되고, 닮다 보면 저 청정법신불(()()()()())과 다름이 없는 원만보신불(()滿()()()())이 되며 그 스승님과 다름이 없는 참다운 제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원만보신불(()滿()()()())은 잃었던 청정법신불(()()()()()) 즉, 자가(()())의 천진불(()()())을 반환(()())하고 회복(()())해서 완전(()())한 권리(()()), 원만(()滿())한 능력(()())을 갖춘분이니, 이 분이 원만보신불(()滿()()()())이 되며 바로 활불(()())인 것이다. 과거(()())에는 부처라고 하면 나무나 돌이나 금(())으로 만들어 절간에 모신 불상(()())을 생각했거나, 아니면 삼천년전(()()()())에 저 인도(()())에서 탄생(()())하시어 별을 보고 대각(()())을 이루시었다는 석가모니불(()()()()())만을 부처로 알아왔지마는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동양인(()()())이건 서양인(西()()())이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유식(()())이건 무식(()())이건 간에 누구든지 저 청정법신불(()()()()())을 오득(()())하신 분은 다 참부처인 것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서는 사통오달(()()()())로 두루두루 다 통(())하고 보면 온 천지(()())가 곧 참다운 법계(()())요, 유형무형(()()()())이 다 한 부처인 것이다. 생불(()())은 산부처님 이시다. 그러기 때문에 밥 먹으면 배부를 줄 알고 안 먹으면 배고픈 줄 알며, 목 마르면 물 마실 줄 알고, 곤(())하면 잠잘줄 아는 부처님! 더우면 시원하게 할 줄 알고 추우면 다숩게 할 줄 알며, 미운사람 곱게 볼 줄 아는 살아있는 부처를 말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세상(()())에는 사람사람 이다 생불(()())이 되어 집집마다 산 부처님이 살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진리(()())와 스승님을 모시고 스스로 생불(()())이 되는 동시(()())에 날로달로 무수(()())한 생불(()())이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기원(()())하고 노력(()())해야 되겠다.

세째는 활불(()())이 되자는 것이다. 시불(()())을 하여 생불(()())이 되자는 것은 곧 활불(()())이 되자는 것이다.

생불(()())이 되어 가지고 옷만 입고 밥만 먹고 잠만 자는 부처라면 아무런 보람이 없는 것이다. 생불(()())이 되었으면 그 힘으로 걸림없이 일할 수 있는 활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활불(()())은 살리는 부처요, 활동(()())하는 부처님 이시다. 내 가정(()())을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고 내 국가(()()) 내 민족(()())을 살리며, 전 세계(()()()) 전 인류(()()())와 시방세계 일체생령(()()()() ()()()())을 구원(()())할 수 있는 활동(()())하는 부처를 말하는 것이다. 보라! 자녀(()())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부모(()())들의 생각이 갊아 있는 것이요. 우리 중생(()())들의 마음에는 모든 성현(()())들의 은혜(()())가 깃들어 있지 않은가? 왜 그렇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그 부모(()())가 그 자녀(()())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셨고 그 부처님 그 성현(()())이 그 중생(()())을 위해서 온갖 심혈(()())을 다하여 활동(()())하신 그 정신(()())이 우리의 피와 살과 마음 속에 속속들이 스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은 세세생생(()()()()) 거래(()())하시면서 마음의 집이 없어서 부평초(()()())같이 떠돌아다니는 중생들에게는 정(())의 안택(()())을 지어 주시는 목수(()())이시요, 마음의 양식(()())을 장만해 주시는 식모(()())이시며 뿐만 아니라 마음의 옷이 없어서 헐벗고 떨고 다니는 중생(()())들에게는 계(())의 정의(()())를 마련해 주시는 침모(()())이시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러서 천백억화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일체(()()) 중생(()())에게 마음의 집, 마음의 양식, 마음의 옷을 마련해 주기로 하면 어찌 일분일각(()()()())인들 방심(()())할 수 있으며 일분일각(()()()())인들 허송(()())할 수 있겠는가? 오직 정성(()())스럽게 모시고 정성(()())스럽게 살아가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다같이 활동(()())한다면 우리도 천백억화신(()()()()())을 나툴 수 있는 활불(()())이되는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든 동지(()())가 봉불(()())의 참다운 뜻을 확실(()())히 깨달았다면 진리(()())의 광명(()())을 세계만방(()()()())에 비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요, 부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은 일체중생(()()()())에게 영겁(()())을 통(())해서 미치지 않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오늘 봉불식(()()())의 의의(()())가 이 법당(()())에 저 활신불상(()()()())을 봉안(()())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몸 법당(()())에 부처님을 잘 모시는데 있고 부처님을 잘 모시자는 것은 생불(()())이 되는 데 있으며 생불(()())이 되는 것은 활불(()())이 되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책임(()())지고 살려내는 데 있는 것이니 다같이 이 뜻을 잘 알아서 실행(()())할 것을 거듭 강조(()調())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