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공부하는데 자수(自修)하는 길도 중요하지만 자각(自覺)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열여섯살에 총부에 와서 대종사님을 뵙고 공부를 몇년 해보니 정신도 맑아지고 기운도 통해져서 혜문(慧門)이 열리고 영문(靈門)도 열려졌다. 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이나 정산종법사님 하신것을 가만히 비교해 보니 나도 이십세쯤 되면 그 측에는 들것 같아 자신이 생기었다. 말을 하여도 못하지 않고 경을 봐도 인식이 되어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세가 되어서는 생사(生死)가 그렇고 인과가 분명한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삼십대에 고민은 어떻게 공부하면 대종사님을 영생동안 모시고 공부하느냐 였다. 나는 내가 여래되려는 서원은 안 세웠다. 대종사님께서 천여래 만보살이 이 회상에서 배출된다고 하셨으니 나도 대종사님을 도와서 그 역할을 하여야 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렇게 서원을 세우고 공부를 하니 사심이 나더라도 곧 대치되었다.
양주에 있을 때는 별별 여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유혹하려 하였으나 나는 천하 만생령을 제도하려는 사람이, 여래를 만들려는 사람이 이런 유혹에 끌릴 수 있느냐 하고 생명과 바꾸자 하고 물리쳤다. 그리고 대종사님의 제자가, 큰 일 하려는 사람이, 내 뒤에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내 마음을 속이고 남의 앞에 어떻게 설 것이냐, 하는 표준을 세우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요양할 때도 산속이나 절에 가서 요양하지 아니하였다. 대종사님께서 산속이나 절간은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수양지는 되어도 사통오달(四通五達)의 큰 도인은 못난다 하시었으므로 절에 가서 하루 이틀은 있었어도 오래 있은 적은 없다.
그리고 대종사님께서 혜문이 열린다든지 영문이 열리어 능한 점이 생길 때 거기에 끌려서 빠지게 되면 큰 재주를 못 얻는다고 하셨으므로 이것도 무섭게 부숴 나갔다.
이 회상을 만나서 영겁을 통해 나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려면 무서운 서원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뛰어가라는 것도 아니다. 성급하게도 말고 뛰지도 말고 차분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쉬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정진이다. 그렇게 하면 진리는 열리는 날이 있다.
대종사님께서 조각 도인 만드는 것은 제일 미워하셨으니 삼학에 표준잡고 자수(自修)하는 길, 자각(自覺)하는 길, 자립(自立)하는 길로 뚜벅뚜벅 삼년, 십년, 이십년, 삼십년 걸어간다면 역사가 바뀌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부하되 스승을 모시고 공부해야 된다. 스승을 안 모시면 어떤 인물이라도 저열한 인물이 된다. 그러니 스승을 모시고 삼대력을 두루 갖추어 무등등한 대각도인 무상행의 대봉공인이 많이 나서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61.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