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창립 인연들의 결속

대종사, 봉래산에서, 각지 신자가 불어남을 보시고, 다시 조단 교화(()()()())를 시험하기 위하여, 원기 6년(1921·()()) 6월에 영광 지방에 남자 1단을 조직하시고, 8월에 영광·김제·전주 등지를 합하여 남자 1단, 여자 1단을 조직하시었으나, 그 후 정원이 고르지 못하고 통치가 귀일치 못하므로 후일을 기다려 다시 실행하기로 하고 종전대로 직접 교화를 시행하시었다. 대종사의 그 동안 교화하신 순서를 대략 말하자면, 대각 직후에는 어떠한 법을 인용하든지 오직 발심으로써 교화의 주체를 삼으시었고, 원기 2년(1917·()())부터 4년(1919·()())까지는 신성 단결 공심으로 교화의 주체를 삼으시었고, 원기 5년(192()()) 새 교강 선포 후로는 교강으로써 교화의 주체를 삼으시었다.

대종사, 입산 후 수년을 경과하여, 장차 정식 회상 열만한 기연이 성숙함을 보시고, 하산의 시기를 기다리시었다. 원기 7년(192()()) 9월에는 송 규를 진안(()()) 지방에 보내시어, 만덕산(()()()) 미륵사(()()())에서 최 도화(()()())를 만나게 하시고, 그 해 12월, 오 창건·송 도성(()()())을 데리시고 친히 가시어, 최 도화·전 삼삼(()()())·전 음광(()()())·노 덕송옥(()()()()) 등을 만나신 후, 이듬 해(원기8년·1923) 3월에 봉래산에 돌아 오시어, 5월에 김제 서 동풍(()()())·서 중안(()()()) 형제를 만나시었다.

이 밖에도, 원평(()()) 구 남수(()()())·이 만갑(()()())·장 정수(()()())·장 적조(()()()) 등과, 전주 문 정규(()()())· 박 호장(()()()), 이리(()()) 박 원석(()()()) 등 초창의 주요 인연들을 차례로 만나시었고, 원기 9년(192()()) 2월에는 정읍 내장사에서 송 만경(()()())을 만나시었으며, 이어, 최 도화의 안내로 서울에 가시어, 박 사시화(()()()()) 형제와 성 성원(()()())·이 동진화(()()()())·김 삼매화(()()()())를 만나시고, 그 후 이 공주(()()()) 등을 차례로 만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