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금강산 유점사와 53불의 유래

불타 열반후 부처님을 직접 뵈옵지 못한 사람(3()())들이 뒤늦게 한탄하는지라 마침 문수 사리 보살이 당래불 회상의 연토(()())를 정하여 드리고자 뜻하였기에 그들과도 인연을 맺어줄 겸 53불을 조성하여 발원문과 같이 종속에 넣고 바다에 띄우니 발원문에 「원컨데 53불께서 당래 미륵불 용화회상이 베풀어질 연토에 정착하여 법기도량을 이루시면 저희도 뒷날 따라가 모시고 일하 겠나이다.」하였다. 이 53불이 중간에 월지국인에 발견되어 나라에서 큰 길조로 알고 절을 지어 모시고자 하였으나 군신의 꿈에 현몽하되 「그대들의 정성은 장하나 이곳은 나의 머물 곳이 아니니 바로 바다에 띄우라. 그렇지 아니하면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을 것이다」하여 군왕이 다시 그 사유를 써 넣고 바다에 띄웠는데 신라 남해왕 원년 (서기 4년) 동해안 안청현(현재의 간성)땅에 도착하였다. 그 때의 현감 노춘이 현몽을 받고 가보니 어민들이 인장한 종속에 53금신불과 글이 있는지라 기이하면서도 큰 길조로 여기어 모셔다 전각을 짓고 봉안하였다. 이가 뒷날 유점사 53불의 유래가 되었으니 (우리나라의 미륵당 신앙도 미륵불이 오신다는 데서 기원하였다 함)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때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보다 368년 전이요,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때 (후한 명제 영평 10년 서기 6년)보다는 63년이나 앞섰다. 화엄경에 해동에 금강산이 있어 종종 성현이 출현하고 법기보살이 주재 한다는 말이 있으니 이는 이 땅에서 새 회상이 기원한다는 뜻이다. 대종사 금강산을 다녀 오시어 시 한수를 읊어 주시니 「금강이 현세계하니 조선이 갱(()()())이라」 하시고 고시 한수를 소개하시되 「보습금강산(()()()()())하니 금강개골여(()()())라」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