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나의 촉수

해운대 교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머리에 불이 붙었을 때 무엇으로 꺼야 하겠는가?」

「수양으로 꺼야 하겠습니다.」

「맞았다. 아침 저녁으로 또 평상시에 수양력과 정력(()())을 쌓아야 불이 붙을 때 쉽게 끌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가 칠야(()()) 밤길을 걸을 때 손전등이 있어야 하는데 다 갖고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큰일이다. 어디를 갈 때 구렁텅이에 빠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손전등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 집에는 전등을 다 켜고 살 것인데 그 촉수가 몇촉이나 되는가?」

「60촉 정도입니다.」

「그러면 각자의 등불은 몇촉이나 되는가? 호롱불인가? 전등불인가?

「전등불로 30촉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그 촉수면 집안은 다 비출 수 있겠는가?」

「다 비출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가정에 파탄이 생겼을 때 등불을 비치면 평온해질 수 있는 등불을 갖추어야 한다.

집집마다 켜놓은 외등도 중요하지만 안으로 비칠 수 있는 정신의 내등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대문에 외등만 하나 켜놔도 이웃집이 환하게 비춰지는 것같이 정신의 등불을 밝혔을 때 이웃에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석가세존께서도 삼천년 전에 인도의 가비라성에서 탄생하셨으나 그 빛이 오늘날 여기까지 비쳐지고 있다. 성현의 빛은 태양빛과 같은 것이다.

내가 요즘 총부 수도원에서 잠을 자는데 나는 초저녁에도 늘 불을 끄고 산다. 그 이유는 밖으로 비추던 외등을 꺼버리고 안의 등[()()]을 밝히기 위해서 외등을 끈다. 그런데 다른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내방까지 환하게 비쳐 온다. 그러나 옆의 방에 불이 켜져 있더라도 벽이 가려 있으면 빛이 통하지 않고 유리창이 있는 쪽의 빛이라야 비춰진다. 멀리 산업원에서 켜진 불이라도 비춰진다. 그런데 모두 불을 끄면 내 방도 캄캄해진다. 그와 같이 빛은 멀리 비춰가는 것이다. 해 운대에 사는 교도님들의 집집에 등불하나씩만 쓰더라도 이웃에 비춰진다. 등불없이 사는 사람은 터덕터덕 함정에 빠지고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그러니 등불을 밝혀야 한다. 나의 등불이 이웃까지 비출 수 있는 등불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종사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현은 천하 인류뿐만 아니라 전 생령에게까지 빛을 비춰 주신다. 그래서 욕심많은 사람들의 어둔 마음을 밝혀 주신다. 태양은 우리의 마음까지 비춰 줄 수는 없으나 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은 마음까지 비춰 주신다. 교도님들은 뜨거운 불빛을 받아 보셨는가? 그 불빛 받아 보야 한다. 그 불빛만 들어 가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된다.

부산에 가서 그 불빛을 널리 전해 주기 바란다.」 (62.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