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견성과 성불

동래교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이 견성성불(()()()())하자는 것인데 보통 생각하기를 견성하면 성불하는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돈 버는 방법을 배웠으면 돈을 벌어야 되지 방법을 알았다고 돈이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인지(()())가 발달이 되어 대여섯 살 되면 견성은 집에서 다하고 큰 도인 찾아가서 성불하는데 공들일 것이다.」하시었다. 성품자리를 보기만 하여서는 안된다. 보아서 원만무애(()滿()()())한 그 자리를 닦아서 그대로 하면 견성 성불이다. 그런데 행은 못하면서 알기만 하면 안된다. 견성이 십점의 공력이 든다면 성불은 구백점의 공력이 들어야 한다. 성불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견성하는 것도 초견성. 중견성. 상견성이 있다. 참으로 견성을 하게 되면 진리를 그대로 해석도 하고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두요목 가운데에 「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 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며 모태중에서 중생제도 하기를 마치셨다.」하였는데 무슨 뜻인가. 또 49년 설법을 하시고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 꽃가지를 드시니 대중은 다 묵연하되 마하가섭만이 파안미소를 하였다. 그래서 정법안장을 마하가섭에게 넘겼다. 이것이 일처전심(()()()())이다. 그 다음에는 다자탑전(()()()())에 분반좌(()()())라, 다자탑 앞에서 우연히 한 자리를 나누어 앉았는데 그것이 이처 전심이고 삼처 전심은 곽시쌍부(()()()())라, 가섭이 철이 들고 도가 들었기 때문에 각 지방으로 다니면서 교화를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줄을 모르고 있다가 부처님이 열반 하시었으므로 애통을 하였더니 관 속에서 두 발이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삼차전심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법을 완전히 다 전하셨다 한다. 그러니 우리도 이 자리를 알아야 한다. 수양하는 길도 있으나 깨치는 길도 있어야 한다. 한 소식을 다 통해 보라.」 (63.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