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중인 부교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공부하는 순서가 젊어서 터득하는 사람도 있고, 시일이 지나서 터득하는 사람도 있는데 문을 두드려서 여는 사람은 그 광명을 얻을 것이고, 열지 않는 사람은 못 얻을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이런 예화를 자주 말씀해 주셨다.
어떤 천인(賤人)이 돈을 좀 벌어 놓고 사방에 다니면서 부자행세를 하려고 하니 말도 못하겠고 글도 모르겠고 하여 공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 그 래서 자기 아들을 공부시켜 양반을 만들어야겠다 하고 공부를 시키려 하는데 아들 또한 멍청했다. 아들이 둘도 아니고 하나 뿐이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가르쳐야 하겠다 하여 선생을 찾아가서 「제 자식 글 좀 가르쳐 주시어 문리를 얻게 해주십시오.」하고 맡기었다. 공부를 시작하여 글을 가르치는데 하늘 천(天)하고 따 지(地) 하면 벌써 하늘 천은 잊어 버렸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이 글을 배우니 좋아서 「도련님! 도련님 덕분에 천인 한번 면해봅시다.」 하고 아들에게 절을 했다. 일년을 가르쳤는데도 하늘 천, 따지도 모르니 선생이 도망을 갈까, 쥐구멍으로 들어갈까 하고 아버지만 오면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일년만 더 가르쳐 보자하고 정성을 들였으나 그대로 였다. 그래서 부친에게 「어쩔 수 없소. 내가 힘이 부족하니 데려가시오. 그동안 내가 받은 술값과 모든 경비는 다 돌려드릴 테니 데려가시오.」하니 그러지말고 일년만 더 가르쳐 달라고 간청을 하여 삼년을 가르쳤다. 삼년을 배웠는데도 멍청하기는 여전했다. 그래서 선생이 받은것 다 물려 주며 데려가시오 하여 어쩔수 없이 데리고 오면서 방죽으로 데려갔다. 「애야! 사람 사는 것은 희망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런 신세가 되었고 너도 그러니 너하고 나하고 이 방죽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 죽자!」 하고 끌고 들어가니 아들은 죽기가 싫어서 발버둥을 쳤다. 둘이 죽자살자하며 하루를 하였더니 나중에는 정신이 통일되어 아들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아버지 제가 한번 더 배웠 으면 합니다.」 하니 「아니다. 삼년이나 배웠어도 그 모양이니 더 배울 것 없다.」 하고 끌고 들어가니 아들이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배운다는데 한번 더 가르쳐 보자하고 굳게 다짐을 받고 선생에게 찾아가 그 경위를 이야기하고 사정을 하여 글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글을 배우는데 「하늘 천, 따 지 부터 이끼 언, 이끼 제, 언호 이끼 야(也)」까지 가르치는데 가르치면 가르치는 데로 다 배웠다. 그리하여 명심보감. 통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을 터득하여 큰 문장이 되었다. 이와 같이 안 하려는 사람이 걱정이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진리를 깨치는 것도 [죽자!] 하고 해야 한다. 남이 깨쳤다고 하니 그저 쉬운 것이 아니다.
대종사께서 병진 사월 이십 팔일에 대각을 하셨다고 하니 그저 밥먹듯이 하신 것 같아도 죽자 하고 하시었다. 밥을 두 그릇을 잡수셔도 모자랄 체구이신데 잡수실 것이 없어서 죽을 잡수시면서 「나 하나 잘 살 것이 아니라 만국 만민을 좋게 해야겠다.」하는 생사를 초월한 서원으로 노력하신 까닭에 한 소식을 얻으신 것이다. 지금 부교무들이 4년을 배웠으나 알기는 알아도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고 모르지도 아니하여 어중간한 때이다. 대종사님 재세시 정양선 법사를 7개월 식당 생활시키시고 호곡교무로 보내시었다. 그래도 죽자 하고 사시어 그분 밑에서 전무출신이 많이 나왔다. 여러분들은 그 때에 비하면 다 법사들이다. 나도 열살 때 와서 대종사님을 뵙고 몇번 왔다갔다 하다가 열여섯살에 다시 왔는데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대종사께서 법력으로 이끌어 주셔서 오게 되었다. 그 때부터 공부를 한다고 정성을 들이니 모든 것이 다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감각감상을 쓰다보면 「세상에 이런 좋은 법이 있구나. 대종사님이 아니시면 내가 어찌 이런 법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여 기쁘고 또 기뻐서 쓰고 또 쓰고 하였다. 그러나 하루 저녁 지내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니다. 틀리게 쓴 것이다.」하는 생각이 들어 불살라 버리고 하기를 스무살 까지 하였다. 그 후로는 진리의 한 소식을 알기는 알았는데 일취월장하게 알아지는 현상은 없어지고 부진한 상태가 되었다.
수심결에 [바람은 멎었으나 물결을 오히려 태산과 같이 솟고[風停波尙湧] 성품은 어느 정도 나타났으나 생각이 침노한다[理現念猶侵]는 구절이 있는데, 나도 내가 무엇을 알았다 하고 무엇을 썼다고 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알고 있는 것은 없고 하여 삼십세까지는 최대의 고경(苦境)으로 살았다. 이 때 설상가상으로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시어 심신(心身)간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의 일생 중 삼십대는 최저로 내려 갔다가 한마음 거두어 거듭난 기간이었다. 삼십대에는 또한 큰 병을 얻어 기도생활과 심고생활로 그 병을 대치하면서 살았다. 그 뒤 사십대에 이르러 지각이 열리고 진리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특이한 생활을 하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공부하는 순서는 자기 처지에 따 라서 순서있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별히 구하거나 과하게 구하지 말고 꾸준히 정성스럽게 나가면 반드시 한 생각 얻을 때가있을 것이다. 한 생각 열릴 때 자만 하지도 말고 자기이상의 동지나 스승님께 감정도 받고 적공도쌓아야 한다.」 (63.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