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이십세시에 일월(日月)이 합치하는 꿈을 꾸었었다. 그 다음날 대종사님께서 나와 육타원님을 위해 법좌에 오르시어 성리에 대한 법문을 내려 주셨다. 그 때 마음이 확 열리며 과거 성자들의 경을 봐도 하나도 막힘이 없고 환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행자들의 옳고 그름, 법의 옳고 그름도 밝게 구분이 되어 걸리고 막힘이 없이 알아졌다. 그때 대종사님께서 너는 이제 입을 열지 말라고 하시므로 누가 성리에 대해 물어도 스스로 알도록 하였지 대답은 안했다. 그러나 알기는 분명히 알았는데 살활자재의 힘은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끔 「내가 사는 것이 밥 세끼 먹기 위해 살고 있느냐? 아니면 무엇때문에 사느냐?」하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함께 심적 고통이 있었다. 그 후 큰 병을 얻어 한의. 양의가 구제할 수 없다고 선언을 하므로 가고 옴을 진리에 맡기고 크게 안심하고 정진하였다. 5개월의 병중삼매로 최대의 좋은 시기였다. 그 때 대종사님과 석가모니불이 한분이라는 것이 알아지고 우리 교단의 수만년 대계(大計)가 환히 비추어지므로 희망과 기쁨에 넘쳐 있었다. 그러므로 남들은 교단이 이래서는 될 것이냐 하고 암담하게 말을 하는 이가 있었으나 나의 마음 가운데에는 오히려 희망이 샘 솟고 있었다. 그때 주산종사가 내 병을 걱정하여 문병을 왔다가 나를 보고 낙망하면서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그 뒤 풍천장어를 보내 주셨는데 그것을 달여먹고 나니 밥맛이 돌아왔다. 그 후로는 허기가 들어 하루에 몇 그릇씩 먹어도 밥맛이 당기므로 그 식욕을 조절할 것을 결심하고 투병하였다. 밥을 선반 위에 얹어놓고 참기란 눈에 불을 쓰고 환장한 사람처럼 힘들고어려웠다.그렇게 오개월을 투병하고 나니 큰 힘이 생기며 천하에 무서울 것이없었다. 결국 살활자재의 힘이 중요한 것이지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대종사님께서 중국은 출가판, 일본은 항마판, 한국은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이 때 이 회상에서 인(印) 못 치면 안 된다. 나도 스승을 많이 모시고 공부했다. 스승을 꼭 모시고 공부하여야 한다.」 (6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