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환중인 균산 정자선(均山 丁慈善)이 본인이 사용하던 전기 이발기를 인편을 통해 올리니 받으신 후 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균산이 이제는 재생(再生)을 단념하고 나에게 최후를 알리는구나. 참으로 가슴 아프다. 그의 순직 기념품으로 소중히 써야 하겠다. 균산은 내가 서울에서 중병으로 치료할 때 나의 대소변을 육개월간 받아내며 간호겸 시봉을 하였고 교무부장을 두번이나 천거 받았으나 「나는 교화에 맞는 사람이다」며 끝까지 사양하고 대전·제원·금산·유성 등지를 남자교무로서 개척하였다. 또한 낯선 미국 교화를 자원(自願)하여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교당을 마련하여 교화를 하던 중 과로로 병을 얻어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는 바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순직이다.』 (5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