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봉인 오덕관(吳德觀)의 출가 동기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머니 고흥권(高興權)의 정성으로 출가하였다니 전무출신 한 사람의 출가 뒤에는 반드시 숨어있는 노력이 있음을 알겠더라. 너는 어머니가 항마도인인 줄 아느냐? 하섬에 가다 배가 뒤집혔을 때 「나는 늙었으니 저 학생들 먼저 건지라」고 하며 자신은 맨끝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그 일이 어려운 일이다. 참으로 훌륭하다. 네가 어머니처럼 살고 간다면 일생을 마칠 때 출가위는 될 것이다. 너의 어머니가 비록 무식해도 도인이다. 이런 도인이 교단 구석에 많이 끼어 있어야 한다.
대종사님께서 내소사 공양주를 여래라고 하셨다. 그 공양주가 더벅머리 총각이었는데, 스님들이 「네가 머리나 깎으면 어디 가든지 스님으로 모시고 밥은 줄 터이니 머리를 깎으라」고 하면 「나는 이대로가 좋다」고 하며 머리가 많이 길면 잘라 팔아서 경(經) 만드는데 쓰도록 하였다. 그가 바로 여래의 화현(化現)이었으니 누가 알았겠느냐? 우리 회상에도 그런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 (5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