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인과 법문 소개 후

성품 자리가 불생불멸이라는 것을 용(())으로도 해석하지마는 체(())자리에서 말할 것 같으면 본래 낳는 것도 없고, 멸함이 없는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성품 자리다. 그런데 그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윤회하면서 선인 선과, 악인 악과로 나타난다. 일원상 자리가 곧 불생불멸한 자리인데 일원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다 불생불멸한 것이니 사량 계교를 해서 낳고 죽는다고 하지, 체 자리는 낳는 것도 멸한 것도 큰 것도 적은 것도 더러울 것도 조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본래 자리다.

그것 하나 잡아 버리면 견성이고, 영겁이 열리는데 그걸 못 보았기 때문에 항상 작은 집에서 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소심 동동해서 미워하고 예뻐하고 좋고 나쁘고 이렇게 산다. 그걸 보아 버리면 아! 그런 것이지,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는 것이지, 미웁다고 본성까지 태우도록 미울 것이 없고 예쁘다고 죽도록 예뻐할 것이 없다.

양주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병들어 곧 죽을 줄 알았지만 망태 하나 짊어지고 대지 산천으로 다니면서 느껴 오는 것이 이 천지에 나처럼 한가롭고 재미스러운 사람이 없는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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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허공은 내 마음의 나타난 바요

시방제불은 내 손 가운데 구슬이다

모든 의두 물물에 걸림이 없으

법계라는 것은 아까 그 대 자리요.

모단이라는 것은 화엄경에 일모단(()()())에 현보광찰(()()()())이라는 말씀이 있으니 한 찰이 현재 나타난 세계 보다도 수억 만배 큰 것인데 그렇게 큰 세계를 이 터럭 위에다 놓고 궁글리니 그 자유 자재한 심경이 어디 막히고 걸릴 것이 있겠느냐?

고슴도치는 그 몸에 가시가 있어서 둥글면 그 가시에 여러 잡다한 것이 묻어 덩치가 커지는데 사람도 진리를 모르면 일생 살고 간 업의 덩어리가 여기서 묻고 저기서 묻어 집채만큼 커져서 내생에 가면 그것에 끌려 다니느라 자유가 없다.

부처님이나 성현들은 한 생각 불생 불멸한 자리를 회광 반조하여 전부 털어 버리기 때문에 묻고 붙는 것 없다.

부처님께서 최후 일념에 무착거하라는 말씀이 무서운 법문이시니 고슴도치 모양 되지 않도록 공부들 잘 해야 되겠다.

<원기57년 10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