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김덕암 명예대호법

유산 김덕암 대호법님께서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만감(()())이 교차하는 회포를 금할 길 없습니다.

유산 대호법의 선친이신 인촌(()()) 어른께서는 이 나라가 무력하여 외국에 강점(()())되었을 당시 소시 때부터 크게 철든 애국 애족의 지도자로 나타나셔서 언론 문화 경제 정치 민족운동 등을 통해서 새로운 국운의 지평을 열어 주신 태양 같으신 어른이셨습니다.

이에 일찍이 우리 대종사님께서도 크게 찬탄하신 바 계셨고, 선친께서 떠나신 이후로는 그 유업을 유산 대호법님께서 이어 받아 그 어려운 이 나라 격동기의 와중에서도 고스란히 지키시면서 더욱 발전시켜 오늘의 이 나라를 이룩해 내는데 큰 밑거름이 되고 빛이 되고 힘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울러 부인이신 경타원 고성용(()()() ()()()) 대호법의 원불교 신앙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시고 본교에 입교하신 후로는 동아일보 특집 기사를 통해 새회상 진면목을 세상에 소개하시는 등 여러 방면으로 본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대호법 공덕주(()()())가 되셨습니다. 이에 유산 대호법님께서는 대효도를 하셨고, 대호국(()()())을 하셨고, 대호법(()()())을 하신 실로 장하신 생애셨습니다.

또한 나는 해방 후 선친이신 인촌선생과 구국의 교분이 있었으며, 유산당은 내가 신도안(현 계룡대) 삼동원에서 정양하고 있을 때 먼길을 찾아 와 나를 위안하며 원불교를 아끼는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나는 그 때의 따뜻하고 흐뭇한 정의를 깊이 새겨 항상 그 고마움을 잊지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생 영겁의 큰 법연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는 생의 대불과 성취를 기원하며 영로를 위로 드립니다.

유산 대호법 영가이시여!

영가의 가지고 있던 그 형체는 이미 지수화풍으로 흩어지옵고 안의비설신의 육근도 이제 그 명색을 감추게 되오니 이에 따라 영가의 수용하던 재색과 명리가 영가에게는 이미 한 꿈으로 화하였으며 친근 권속 친지들도 전일에 대하던 그 얼굴로는 서로 영결이 되었으니 이제 오직 생멸거래가 없고 망상번뇌가 끊어진 본래의 참 주인을 찾아서 미래 세상에 불연을 다시 만나서 반드시 불과를 얻어 세상과 생령을 구원하는 대인이 되옵소서. <원기79년 1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