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한 이치에 · 제1편 법문(法門)과 일화(逸話) · 9.오직 한 길 · 73절

73절철학 교수인 안 병욱(()()())은 그의 글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제하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정산 종사라고 찬탄하였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다.`라고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말했다. 깨끗한 얼굴의 소유자는 접해 보면 확실히 마음이 깨끗하다. 지저분한 얼굴의 소유자는 어딘지 마음이 지저분한 데가 있다. 분명히 겉은 안의 표현이요, 안은 겉의 결정(()())이다. 문자 그대로 내외상반(()()()())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본 한국인의 얼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이리 원불교 (()()()()()) 본부(()())에서 본 송 정산 선생 (()()() ()())의 얼굴이었다.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약 5년 전이라고 기억한다. 이리 원불교(()()()()()) 본부의 강연 청탁을 받고는 4일간 그 곳에 머문 일이 있다. 나는 2백여 명의 교역자들에게 현대 사상(()()()())에 관한 강의를 7, 8 시간 하게 되었다. 모두 단정하게 앉아서 일심 분란(()()()())으로 경청하는 태도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딴 청중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느꼈다.

이왕 며칠 머무를 바엔 원불교의 교리나 알고 가자는 생각에서 나는 열심으로 원불교의 교리를 읽고 연구했다.

하루는 원불교(()()())의 종법사님을 뵙도록 권면(()())한다. 훌륭한 분이라고 한다. 현재 종법사는 정산 송 규 선생(()() ()()()())으로 여러 해 동안 중풍을 앓고 계신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옥(()()) 넓은 방에 들어갔더니 나이 60세쯤 되는 동안 백발(()()()())의 노인이 앉아 계시다.

나는 웃어른을 대하는 공손한 태도로 송 정산 선생에게 인사를 드렸다. 나는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좋은 얼굴이었다. 어린애와 같이 천진난만한 동안에 깊은 화열(()())의 표정이 넘친다. 불그레한 안색은 백발과 조화하여 노숙(()())의 품위가 떠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단아 무비(()()()())한 얼굴이다.

송 정산 선생은 먼저 나의 고향을 묻는다. 서울서 이리까지 내려와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리고, 신병(()())으로 기거좌와(()()()())가 불편해서 이렇게 앉은 채로 인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미안해 하신다. 범상(()())한 분이 아니라고 나는 직각(()())했다.

차근차근 조용히 말씀하시는 그 음성과 태도에는 깊은 정신의 수양(()())을 쌓은 종교인의 면목(()())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나는 황홀한 마음으로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40 평생에 그렇게 좋은 얼굴은 일찌기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품위와 예지(()())와 성실의 빛이 흐르는 얼굴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에 속한다.

소설 같은 데서 도인(()())의 얼굴을 보통 사람과 분명히 다르다는 이야기를 가끔 읽은 일이 있다. 나는 이제 그 본보기를 송 정산 선생의 얼굴에서 실지로 보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은 분명히 뛰어난 도인의 얼굴이었다. 온 몸에서 무엇인가 따뜻한 기운이 발하여 나를 흐뭇하게 안아 주는 것만 같았다. 동심 동안(()()()())의 미(())라고 느꼈다.

나는 하나의 경이(()())를 눈앞에 보는 듯하였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공연히 기뻐지는 얼굴이었다. 얼마나 정성껏 수양의 생활을 쌓았기에 저와 같이 화열(()())과 인자(()())가 넘치는 얼굴이 되었을까. 나는 마음 속에 단단히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너는 아직 멀었다. 저 분을 보라.`

하고 무엇인가가 나를 후려 갈겼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어떤 얼굴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얼굴은 분명히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정도 제 얼굴을 만들어 나간다. 성실의 정신으로 수십 년 살아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성실의 표정이 아로새겨진다.

무책임과 되는 대로의 생활을 몇 해 계속하면 자연히 얼굴에서 청순(()())과 정기(()())가 사라져서 보기 흉해진다.

얼굴은 인간의 생활사(()()())요, 정신사(()()())다. 생활의 결정(()())이 얼굴에서 새겨진다.

나는 송 정산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 청순과 화열의 표정이 깊이 조각되기까지에는 얼마나 정성된 노력을 하였을까 생각했다. 저 화열의 표정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꾸준한 인간 수양(()()()())의 결정(()())이다.

이리를 떠나는 날, 나는 작별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송 선생님 방에 다시 들어갔다. 나는 한참 동안 앉아서 그 희귀(()())한 얼굴을 부러운듯이 바라보았다. 약 70쯤 나 보이는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방에 들어와서 송 선생님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이마를 장판에 대고 한참 동안 지극히 공손하게 절을 한다. 송 선생님은 앉은 채로 응하신다. 원불교의 독실한 신도인 그 할머니는 있는 정성을 다하여 송 선생님에게 공경한 인사를 하였다. 나는 놀라운 마음으로 그 할머니를 지켜보았다.

나는 평생에 그렇게 공경스러운 인사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성 그 자체요, 공경 그것이었다. 더할 수 없이 깊은 존경의 표시였다. 한 인간이 딴 인간에 대해서 저렇게 공손한 인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마음 속으로 혼자 놀랄 뿐이었다. 그 할머니의 송 선생에 대한 인사는 내가 이 세상에서 본 인사 중에서 가장 정성되고 가장 경건한 인사였다.

그 인사와 마찬가지의 경건한 인사를 나는 인도 뉴델리의 어느 사원(()())에서 다시 보았다. 인도의 한 여인이 향기가 짙은 흰 꽃을 한 아름 신(())의 동상 앞에 바치고 온 몸이 경건(()())의 덩어리가 되어 한참 동안 이마를 땅에 조아리는 공손 무비(()()()())한 태도를 보고, 아아 경배(()())란 과연 저런 것이로구나 하였다. 내게는 그러한 경배(()())의 대상이 없는 것을 나는 섭섭하게 생각했다. 나는 송 정산 선생에게서 내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좋은 얼굴을 보았고 송 정산 선생에게 이마를 조아리던 그 이름 모르는 늙은 할머니의 인사에서 내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공손한 인사를 보았다. 전자는 단아 화열(()()()())의 얼굴이요, 후자는 공손 무비(()()()())의 인사였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인생의 정경(()())이었다. 모두 인간의 지극히 행복한 표정이다.

서울에 돌아와서 나는 송 선생님께 엽서 한 장을 보냈다 . 도법 자연(()()()())이라는 노자(()())의 말을 붓으로 쓰고 나의 낙관(()())을 하였다. 얼마 후에 송 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붓으로 심월상조(()()()())라고 넉 자만 쓴 엽서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달은 서로 비춘다는 것이다. 심월상조(()()()()), 정말 좋은 말이다.

그 후 송 선생님의 화열 단아(()()()())한 얼굴을 또 한 번 뵈러 가야겠다고 벼르다가는 나는 미국에 가게 되었다. 귀국 후 선생님의 별세(()())를 알고 서운한 생각을 누를 길이 없었다. 송 정산 선생(()()()()())은 정말 좋은 얼굴의 소유자였다고 아쉬운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