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기 들어와서 세세생생 이 회상을 떠나지 않고 대종사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최대의 정성과 신심을 가지고 스승님들께 배워 나갔다. 그래서 나는 스승이 많이 계신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인도사(引導師)는 삼타원 최도화(崔道華)정사이신데 내 나이 열한 살 때 만덕산으로 대종사님을 뵈오러 가자고 하며 [너의 원(願)이 무엇이냐?]고 물으시었다. 그 당시 세계전쟁이 일어나서 세상이 혼란하던 때라 「내 생각 같으면 큰 성현이나 위인이 나시어 대포 하나를 크게 만들어 싸우려 할 때 대포를 펑 터뜨려 싸울 수 없게 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바로 그 대포 만들 줄 아는 분이 만덕산에 계신다」고 하시며 [그분이 바로 대종사님이시라고] 해서 우리 어머니 〔안경신정사〕와 할머니〔노덕송옥〕와 작은 아버지하고 몇분이 최도화정사의 인도로 만덕산에 가서 대종사님을 뵙게 되었다. 그때 다른 분은 다 내려 가시고 나 혼자만 있는데 저녁에 변소 가기가 걱정이 되었다. 대종사님 모시고 살았지만 팔산 대봉도가 나를 보살피시고 위안 주시느라 애쓰셨다. 그래서 초도사(初導師)가 팔산대봉도이시다. 또 발심사(發心師)는 삼산종사(三山宗師)이시다. 선방(禪房)에서 정정요론(定靜要論)을 대종사님 모시고 배우는데 막히는 것이 있을 때에는 삼산종사가 이끌어 주시고 발심나게 해주시어 우리 만대에 수양하는 길이 여기 있겠구나 생각되어 발심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신심을 일어나게 하신 분〔信心師〕들은 전삼삼(田參參) 김남천(金南天) 선생이시다. 또 나의 뜻을 세워 주신 스승〔立志師〕은 주산종사이시다. 나보다 육 칠세 위이신데 논어 (論語)를 가르치시는 것을 보니 바로 공자님이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산종사에게 글을 배우며 뜻이 굳혀졌다. 또 나에게 불경을 가르쳐 주신 스승〔佛敎師〕은 서대원(徐大圓) 정사이시다. 나는 대종사님 모시고 살면서는 순전히 원불교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른 데 다니지 아니 했었다. 그런데 서대원정사가 그 당시 불교계의 이름있는 강사들에게 다녀오고 하였다. 다녀오면 송대에서 같이 자며 불경(佛經)을 듣고 보고 문답했다. 그리고 유학 (儒學)은 구산 송벽조(久山 宋碧照)대희사와 유허일(柳虛一)선생한테 배웠다. 또 좌우에서 힘 밀어 주신 은형(恩兄)들은 응산·육타원종사와 형산·성산법사이시다. 대종사님은 나를 찾아 주신 스승님이시고, 아버지이시고, 내 마음을 낳아 주신 은사부(恩師父)님이시다. 몸은 부모님이 낳아 주셨지만 마음은 대종사님이 낳아 주셨기 때문에 심사부(心師父) 이시고, 삼학팔조(三學八條) 사은사요(四恩四要)법을 알게 해주셨으니 법사부(法師父) 이시다. 정산종사님은 은사형(恩師兄) 심사형(心師兄) 법사형(法師兄)이시다. 대종사님을 십오년간 모시고 청소하며 살았어도 참 모습을 뵙지 못했는데 정산종사님께서 뵙게 해 주시고 키워 주셨다. 처음 왔을 때 팔산대봉도나 사산(四山)대봉도가 정산형님이라고 부르셨다. 나는 선생님이라고 하며 절을 하고 받드니 화를 내시며 「선생님이 뭐냐 형님이라고 해라」 하시더라. 그래서 정산종사님은 은사형·심사형·법사형이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스승님이 참으로 많다. 대종사님께서 가르쳐 주신 스승이 계시므로 숙사 (宿師)로 한국에 부설거사, 수운대신사, 증산선생, 내소사의 더벅머리총각과 이진사, 나옹대사, 진묵대사 등을 접붙일 것은 접붙였고 또 사대성인(석가·예수·공자·소크라테스) 과 중국에 달마대사와 육조대사·포대화상·방거사 등과 인도에 유마거사 등 역대에 잊지 못할 스승들이 많이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