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송대에서 양로원 할머니들과 학생들에게 사제지간(師弟之間)의 도(道)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사가(私家)는 위에서 아래로 정(情)을 주지만 법가(法家)는 그와 달리 밑에서 위로 바치는 정성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법가의 정의(情誼)는 속가(俗家)의 정의와는 다르다. 스승이 모르더라도 진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스승한테 바친 이상 더 오는 것이 진리이다. 나는 내 부모님을 직접 봉양(奉養)은 못해 드렸지만 조석심고로 꼭 모시기 때문에 그 진리도 영원히 갈 것이다.」 향산 안이정(香山安理正)법사에게 물으시기를 「스승의 정의와 부모의 정의가 어데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제 생각으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통 수도인들은 육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혜는 일생에 끝나고 정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혜는 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도가의 자녀들은 똑같이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내 육신을 낳아서 공가(公家)에 바치신 부모님 은혜를 영겁토록 빛나게 해야 한다. 설사 부모가 이해를 못하 신다 하더라도 내가 정성을 다해서 일생 또는 돌아가신 후라도 정성을 다 할 것 같으면 그 맥이 같이 되기 때문에 정신의 부모와 육신의 부모를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
오조 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가 육조 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에게 법을 전할 때 다른 사람에게 해(害)를 당할까 하여 밤에 포장을 치고 법을 전하고 보낼 때의 심정이 어떠했겠느냐? 또 부모가 자식을 천리 만리 다시 돌아오지 못 할 먼 곳으로 보내며 눈물을 흘리는 그 심정 어떠하겠느냐? 도가에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하나는 자기 몸과 마음과 생명과 전 재산을 바칠 수 있는 스승 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요, 둘은 자기의 생명 재산 모두를 맡길 수 있는 제자를 만났을 때의 기쁨이며, 셋은 이 공부 이 사업을 할 때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내 창자를 이을 수 있는 동지를 만나서 일할 때 그 기쁨 또한 같은 것이다.
너희들이 사년 동안에 죽기도 같이 죽고 살기도 같이 사는 동지를 하나라도 만날 수 있었는가? 생각해 봐라. 우리 회상의 구인 선진님들이 그러하셨고 또 현재 재가. 출가를 통해 그런 분이 많이 있다.
여기 고흥권(高興權)씨 오셨는가? 저 분은 하섬으로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 배가 뒤집혀서 다 죽게 되어 구조작업(救助作業)을 할 때 흥권씨를 먼저 구해 드릴려고 하니 「나는 늙었으니 학생들 먼저 구해 주라.」 하여 제일 늦게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는 바로 제 2의 혈인성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최후의 구경에 가서는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창자를 이을 수 있는 동지를 만나야 한다. 그 혈통 하나만 만나면 일은 다 된다. 끝으로 한 마음자리를 보아서 내 마음을 자유자재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가 즐겁다.」 (6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