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위로 불지를 더 배우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여 자각각타(自覺覺他)하시는 분이다. 출가위 자격의 조항이 보살의 심법이다.』
이어 물으시기를 『부처와 보살의 경지가 어떻게 다르겠느냐?』
사뢰기를 『부려 쓰고 초월하는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보살에는 부려 쓰는 힘이 없겠느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없겠느냐?』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 안 놓고 지속하면 된다. 너희들 팔조(八條)를 아느냐? 밥 한 그릇이 몇 수저 되느냐. 밥 먹을 때 한 수저에 배부르더냐? 한 수저 두 수저 먹을 때 배부르지 않더냐?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 깨치셨다고 해서 한번에 다 아신 것이 아니시다. 진리의 원덩치를 아셨다는 뜻이다. 부처님도 대각하신 후 법을 전하여 보니 중생들이 잘 알아 듣지 못하므로 진귀조사에게서 인과응보의 이치를 설법하는 법을 배우고부터 제도사업을 활발히 하셨다 한다. 부처 님도 쉬지 않고 배우신다.
대종사님께서도 대각하신 후 변산에 들어 가실 때 어느 암자에 「불여만법 위려자시심마(不與萬法爲侶者是甚魔」를 보시고 잠깐 막히셨으나 연마 후 알으셨다 한다.
너희들 이 소나무가 몇 년이나 컸겠느냐?』
『육칠십년 된 것 같습니다.』
『이 소나무가 클 때 눈보라 비바람 같은 경계를 겪지 않았겠느냐? 부처님들도 쉽게 부처 되시고, 쉽게 크신 것이 아니시다. 이 나무와 같이 모진 경계를 다 지내신 후 되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앞으로 오십년 동안만 어디에, 또 누구에게도 끌려가지 않고 가면 된다.』 (58.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