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봉인 이성국(李聖局)이 여쭙기를 『마음공부의 표준을 어떻게 잡고 살으오리까?』
말씀하시기를 『여래를 표준으로 잡아라. 여래란 오는 것 같을 뿐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오되 오지 않고〔來而不來〕 가되 가지 않는〔去而不去〕것이다. 그러므로 육근(六根)이 육진(六塵) 가운데 출입하되 물들고 섞이지 않는 것이다. 오고 감에 얽매이지 않고 오고 감에 흔적이 없어서 오게 되면 가는 것이 여래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하라」 하시었고, 유가(儒家)에서는 「화이불류(和而不流)」라 하여 만유에 화하되 흐르지 않는다 하였고, 선가(仙家)에서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하여 화한 빛이 티끌에 함께 한다 하였으니 구슬이 진흙에 묻혀도 썩지 않고 그 빛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부설거사(浮雪居士)는 부부생활하면서도 그 힘을 얻었다. 우리 회상에서는 거진출진(居塵出塵)의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앞으로는 활불(活佛)이 활동하여야 하므로 산중이나 법당에 모셔진 부처로 는제도하기 어렵다. 부처님이 가신 지 오래 되므로 그때 내놓은 수행법을 따라 행하다 보면 조각 도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대종사님께서 앞으로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되도록 이미 법과 제도를 마련해 주셨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 스승님, 이 법, 이 회상을 만났으니 아무리 어둡고 둔한 사람이라도 육십년만 잘 자라면 된다.
오욕(五慾)에 흐르지 말고, 잘한 것에 새지 말고, 별것 없다 포기 말고, 좋아 하는 것에 물들지 말고 적공하면 이룬다. 여래와 범부는 평범하기 때문에 같다. 그러나 보살들은 청렴하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보인다. 여래는 범인과 같이 하시나 방향이 다르므로 영생에 크게 다르시다. 범인은 사리사욕으로 노력 하지만 여래는 일체생령을 위하여 노력하신다. 이 회상에서도 그 체(體)를 어떻게 잡고 나가느냐가 문제이다. 항마, 출가, 여래의 체가 있다. 이 체를 잡고 나가는 사람들과 같이 하고 협력하면 그 사람들과 같아진다.』 (58.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