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교당에 들리시어 시자로 하여금 교도들에게 법위표준을 설명하도록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금년에 법위사정을 할 때 항마까지 하도록 하였는데 이 교당에서는 몇 분이나 나올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전에 빠진 분들의 공부와 사업성적을 모두 사정하여 올리도록 해야 하겠다. 우리 교도님들 중에도 한 달 출가가 있고, 몇 달 출가도 있다.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잘했 다고 공치사도 하지 않고, 그저 당신의 일로 알고 일을 하면 바로 출가위다. 슈바이처 박사가 호의호식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 수 있었을 터인데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가 나 혼자만이 잘 살 수 없다.」하며 밀림의 흑인들 속으로 들어가서 일생을 거기에 바쳤다. 그러니 출가위시다. 공부로서는 큰 도덕을 못 얻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서는 출가위다. 또 간디옹도 출가위시다. 그 일생을 인도인 삼억을 위해서 바치셨다.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영국인들을 미워했을 터인데, 미워하지 아니하고 무저항(無抵抗) 비폭력(非暴力)으로 대치 하였다. 하루는 인도인들이 영국의 기관건물에 불을 지르자고 하였을 때, 간디옹은 「아니다. 나는 내 나라를 찾기 위하여 노력할 뿐이지 인류의 파괴자는 되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 마음이 출가위이다. 또 자기 동료가 자기를 쏘았을 때 다른 사람 같으면 죽을 때에 「나는 자기들을 위하여 바쳤는데 나를 죽이다니.」하고 원수를 삼았을 것인데 죽으면서도 「나는 내 명대로 죽으니 그 사람을 용서해 주라.」하였다니 그것이 바로 출가위이다. 우리 교단에서 몇 년 안에 출가위가 남녀, 재가출가간에 각각 한 단 이상씩은 나와야 하겠다. 그러니 정읍교구에서도 육년간을 법위승급의 해로 정하고 노력하기 바란다.』 (61.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