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학과 학생들에게 「갈매기의 꿈」에 대한 책을 소개하게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이 소설은 우리의 법위등급과 비슷한 경로를 말하고 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먹기보다는 나르는 것을 택하고 나르는 연습을 혼자 시작 하는 것은 불문(佛門)에 드는 첫 걸음과 같다. 또 갈매기 패로 부터 온갖 시비를 듣고 추방을 당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죽기로써 나르는 연습을 하는 것과, 또 날다가 다치고 위험한 일을 수 없이 당해도 실망이나 낙망없이 연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거기서 큰 힘을 얻는다. 공부인도 같은 일을, 같은 법을, 훈련을 통해서 백번 천번 만번 거듭할 때 큰 힘을 얻고 큰 인격을 이루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 처음에는 몇 근짜리를 들고 다음에는 열근짜리 다음에는 오십근짜리, 또 그 이상을 계속 단련하면 나중에는 상상못할 무게를 들 수 있는 것이다. 단련이 공부인에게는 생명이다. 단련할 때 바른 길로도 가봤다, 다른 길로도 가봤다 하면서 쉬지 않고 단련하면 결국 무서운 힘을 얻는다. 그와 같이 정신단련을 계속하면 진리의 요체를 터득하게 되고 몇 천년 몇 만년을 뚫어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갈매기가 상당한 수준까지 날을 수 있으나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또 연습하고 연습해서 더 높이 더 높이 날게 되는 것같이 수도인도 삼대력을 얻으면 상상못할 힘이 솟는 것이다. 또한 갈매기가 많은 연습을 하여 자기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되어 갈매기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세계의 갈매기가 와서 나르는 시합을 하자고 하여 시합을 해보니 자기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경지의 비상(飛翔)을 하므로 그때야 자만을 버리고 또 배우기 시작하여 관념비상(觀念飛翔)의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을 법위에 비교하면 항마 정도에서 능집(能執) 법집(法執) 아집(我執) 국집(局執)이 되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정산종사님께서는 십삼세시 경상도에 계시면서 공부를 많이 하셨으나 원래 생이지지(生而知之)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대종사님을 만나 뵙고는 대종사님께 일일히 시정받으셨다. 그리하여 대종사님과 하나가 되시었다.
지방에서 교도들이 교무에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대우하면 좋아만 하고 위를 볼 줄 모르면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오를수록 더욱 위를 보고 올라가서 나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너희들도 고기나 주워 먹고 사는 갈매기인가, 높이 나르는 갈매기인가 반성해 보아라. 이 소설은 서양사상이 동양으로 전환하는 기점을 영험으로 쓴 것이니, 앞으로 우리는 준비를 잘해 두었다가 내주어야 하겠다.』 (61.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