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십정기 법문

시자에게 십정기(()()())에 대한 법문을 선학원 졸업반 학생들에게 소개하게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십정기에 대한 법문을 연마하고 공들이게 된 연유가 있었다. 6·25당시 총부가 인민군에게 점령을 당하여 인민군들이 원불교 간판을 떼라고하여 정산종사님과 간부들이 회의를 하고 간판을 떼어 대각전 아래 건물에다 걸었었다. 그 때 정산종사님께서 몸소 안고 가시고 대중들은 지하실에 피해 있었다. 이 때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이제는 대종사님 회상도, 종교도 끝장이 났구나 하고 돌아선 사람도 많이 있었다. 총부에는 인민군 호남지구 사령부의 일부가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중요기지가 되었다. 아군 비행기는 날마다 상공을 날며 기총소사를 하므로 총부가 불바다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무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 때에 우리들이 기도 올리기를 「법신불 사은이시여, 대종사님 성령이시여, 삼세 제불제성이시여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고비를 당하였나이다. 이런 때 일수록 저희들 마음이 변함이 없고 모두가 무사하게 하여 주시오며 총부를 무사히 수호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하오면 더 이상 큰 은혜가 없사옵고 다른 바램도 없겠나이다.」하고 기도 올렸다. 그 때는 살아남는 것이 제일 큰 일이었으므로 우리가 반 이상만 살아남는다면 이 법을 지키고 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각오로 살았었다. 우리 동지들은 전란이 평정되면 이 때를 생각하여 서로 정의로운 마음으로 살고 서로 아끼고 이해하며 기쁘게 살자고 맹세를 했다.

그 때 희생당한 분이 박창기 선생인데 팔타원법사 아들 필국이가 이리로 피난을 안오려고 하므로 그를 따라 양주농장으로 가게 된 것이 결국 희생을 당했다. 희생이 아니라 순직이었다. 전국 각지방을 다니며 피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니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므로 총살당하기 쉬운 때였다. 그러나 박제봉, 최도화, 박진오 선생님께서 생명을 무릅쓰고 자원하여 전국을 무사히 순회하고 돌아왔다. 희생자가 없음을 알고 총부에서 공사를 하여 영산성지에서 봉고재를 올리기로 하고 나와 숭산, 상산법사 등 여섯명이 대표로 가서 대종사님과 법신불 사은의 은혜 속에 희생없이 무사히 전란을 겪었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봉고재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영산에 있으면서 대종사님께 보은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대종사님께서 발굴하신 우주의 대원기(()()())를 발굴하여 전 인류 전 국민 전 교도 전 생령에게 보급해 주는 것이 큰 보은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년간 서원을 올리면서 이 십정기에 대한 법문을 뽑았다. 영겁을 통하여 대종사님의 뒤를 따르고 삼세제불제성의 뒤를 따르려면 이 십정기 중 한기운이라도 타야 세계의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십정기는 원기(()())·정기(()())·정일지기(()()()())·호연지기(()()()())·도기 (()())·중기(()())·영기(()())·진기(()())·지기(()())·대원기(()()())이다.

너희들이 앞으로 삼십년을 정성스럽게 적공한다면 세상이 알고, 오십년 적공하면 시방세계(()()()())에서 다 알게 되어 진리계에서 성성식(()()())을 거행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