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산 신도형 영가여!
영가는 38세의 짧은 생애였으나 참으로 크고 장한 순직의 일생이었도다. 숙세의 법연으로 이 대도회상을 일찍 알아보고 출가한 후 신성은 초지일관(初志一貫) 만난(萬難)을 넘어섰고 사무치는 그 서원은 대종사님과 삼세 제불제성님들과 영생을 같이하여 이 회상의 주인이 되었도다.
도형 영가여! 정업은 난면이라 하나 교단 만대의 기초를 다듬고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되어야 할 이때에 영가와 같은 법기(法器)가 천만이 있어도 오히려 부족하거늘 한창 일할 나이 38세로 그 큰 뜻을 다 펴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니 이에 어찌 슬픔과 섭섭함이 크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영가는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나 많은 불보살을 배출하기에 진력하였고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사표가 되어 그 얼을 이 회상 구석구석에 심어 놓았도다.
이미 지수화풍 4대로 모인 도형(道亨)의 색신은 갔으나 불불계세(佛佛繼世) 성성상전(聖聖相傳) 심심상연(心心相連) 법법상법(法法相法)하는 그 법신의 도형은 길이 멸하지 아니할 것이로다.
도형 영가여! 성품의 본래 자리에는 생사거래가 없으므로 조만이 없는 것이니 오직 본래 크게 세웠던 성불제중의 대서원 아래에 청정일념으로 다시 올 것을 간절히 부탁하며 다음 법구(法句)로써 영겁의 법연을 더욱 두터이 하고자 하는 바이다.
一圓大道 永劫法子
大事未盡 速往速來 <원기58년 2월4일>
도형의 급병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천력을 빌려야 하겠으니 정성 드려 심고 올리고 앞으로는 사람들을 숨겨서 키우고 진력을 못하게 하고 순서 있게 나가게 하여야 하겠다. 이번에 영생의 업력이 하나 풀리는 것 같다. 우리들이 과거 수 없이 회상을 열고 다닐 때나 정치에 나가 일할 때에 사기를 눌렀을 터이니 그것이 한번에 밀려오는 듯 하다. <원기58년 2월1일>
도형의 열반 悲報를 받으시고
큰 판국이었다. 대중이 다 말하더라. 헌거롭기가 그 판국이 여래이다. 나이가 아직 어리나 큰 판국이었고 장하였다. 젊어서 갔으나 저야 여래의 기틀 다 잡고 갔으니 영생 걱정 없다. 삼산종사 열반 후 대종사님께서 상심하시므로 앞으로 수없는 삼산이 나오기 위하여 삼산이 가신 것 같습니다 하니 크게 위안 받으시었다. 그 후에 큰 법기가 많이 나오더니 도형도 아마 큰 법기를 많이 내기 위하여 일찍 간 것같다.
본인은 가히 큰 판국으로 성가(成家)를 이루었고 상봉 하솔을 모범적으로 하였었다. 모범적으로 진력이 되었었다. 그리고 교단이 너무 컸으니 이젠 교단의 영생 전진을 위하여 후퇴하고 개인이나 교단이나 내실(內實) 저력(底力) 세근(細根)으로 실력 갖추는데 전력을 다 하자.
도형 법위는 정식법강항마위로 하여 놓고 뒤에 그 제자들이 추존토록 하라. 그의 실적이 많으니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나와 추존하여야 한다. 주산종사도 40대에 열반하였으나 뒤에 출가위로 추존하였다. 주산종사 못지 않다고 좌우에서 말한다. 큰 도인들은 도력이 더 있고 없고가 없이 오직 자기 분야만 끝나면 떠난다. 도형이가 정만 들여놓고 떠났구나. 그러나 대중이 한결같이 인증하니 됐다. 저만 기운 타면 되냐, 다른 사람도 타야지, 그러니 간 것 같다. 선종법사님께서도 도형 대학 입학시 시비가 분분하니 육조 같은 분이 오셔도 시비하고 안가르치겠느냐? 하시고 공부하도록 한 사람이다. 그 말씀을 여러 사람들이 받들었다. <원기58년 2월2일>
도형 영전에
대종사님께서 영겁에 수도 정진하신 뜻은 생사가 없는 진리와 인과 있는 진리로써 한 근원을 삼으시고 이 이치로써 만생령으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이요. 이 색신은 거짓이라 가고 옴이 있지마는 법신 청정한 일점의 정령(精靈)은 만겁(萬劫)을 통하여도 가고 옴이 없고 죽고 남이 없는 것을 알게 함이다.
영가는 그 진리를 알고 간 사람이고 또 대중이 그 진리로써 기원하는 바이다. 이 큰 서원이 무량겁을 가더라도 변함이 없이 대종사님이 세우신 큰 뜻, 하나의 세계를 만드시려는 도형은 남보다도 먼저 앞장섰고, 그 뜻을 깊이 간직할 것과 또 10여년 간에 육영 사업한 그 정신과 얼이 남아서 앞으로 항마위 출가위 여래위가 많이 생김으로써 영가는 그 이상의 법위도 오를 수 있을 것이니 일원대도 영겁법자가 되어서 만생령의 부모가 되시는 대종사님의 뒤를 세세생생 따르고 또 우리 동지와 함께 이 법을 받들어서 나가야 하니 지금 대사가 많이 밀려 있은 즉 속왕속래하여 큰 뜻을 세우기를 동지와 더불어 진심으로 비는 바이다. <원기58년 2월4일>
발인식을 마치고 온 유가족들에게
갑갑하고 슬프기로 말하면 여러분들 보다 내가 수만배 더하다. 여러분들은 단지 혈연이라는 데서 그렇지만, 나는 가꾸고 키웠다.
천지가 생기고 인류가 있은 후 지금까지 안 죽어 간 사람 없다. 그간 어떻게 살았느냐 가 문제이다. 보통 사람들은 미몽 중에 살다 미몽 중에 죽는다. 그러나 수도인이나 달인들은 진리를 깨고 진리 생활을 하다가 간다. 그러므로 사람 중에는 미몽 중 거래하는 중생과 각도(覺道) 중 왕래하는 불보살이 있다. 그러므로 각도 중 일생이 미몽 중 천생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이런 큰 도인과 짧은 기간이나마 부부인연을 맺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물론 육신상으로 볼 때는 슬프나 그런 도인과 하루만 살다가도 그 행복 비할 바 없으니 울거나 너무 비통해 하지 말라.
도형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생활을 하고 간 사람이며 트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36억 인구 가운데 이런 사람 찾을 것 같으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죄없이 순직하였고 깨닫고 산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다 정한 바 숙명이고 곡절이 있는 것이다. 누가 억지로 못한다. 돈있고 권리 있는 사람들이 생사를 마음대로 하였다면 임금이나 대통령들은 지금까지 다 살아있게. 그게 그런 것 아니다.
이번에 상하 좌우 누구나 혈성을 다하여 이 젊은 도형의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보통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런 일 당하면 권리 관계로 잠시 그렇지 이렇게 혈성은 아니한다. 누가 그러했는가? 참으로 깨고 간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죄없이 사약을 받을 때 웃으며 받았고 좌우에서 살기를 권하니 너희들 왜 나를 괴롭히느냐 하였다. 그는 죄없이 죽어야 하는 그 일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다하였지만 도형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을 당하였으나 추호도 동요함이 없이 시종일관 웃음으로 대하였다 하니 과거 성현군자도 드물게 한 일이라 생각된다. 병이 급변하여 숨이 차 오르고 온몸이 사색으로 변하여 굳어 가나 태연자약하여 웃음으로만 대한다니 이것 보통 심법이 아니다. 나는 대종사님의 법이 크고 이 회상이 보통 큰 회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회상에 이런 큰 사람이 다녀갔구나 할 때 마음 흡족하였다. 지금 모른다 할지라도 앞으로 2, 30년만 지나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 우리 눈이 어두워 모른다.
대종사님 열반하신 지 30년, 선종법사님 열반하신 지 20년도 안되었으나 서양에서 동양에 성인이 나셨다고 야단들이다. 도형은 상하 좌우에서 아주 귀하고 큰 인물이었다고 뒤에 크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법위가지고 구애하지 마라. 대종사님께서 그러셨다. 「너희들 나를 몰라도 나는 걱정 하나 아니한다. 내가 다녀와서 내역사를 찬양하고 꾸민다. 그러기에 남이 잘못한다 해도 걱정 없다.」
알아주고 몰라주는 것에 걱정 말라. 도형은 10년 전부터 각도(覺道)중 생활하였다. 인증하는 스승이 있고 동지와 후배와 제자만 있으면 여래다. 그렇지 못한 사람 천만인이 이야기하여도 소용없는 것이다. 깨쳐도 매하다. 깨쳐서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 스스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원기58년 2월5일>
도형 2제식 마친 후
도형 2제식 마친 후 인사차 온 유족들에게 「覺得無生法印無漏智道通」이라는 친필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일원상 자리다. 도형은 이 자리를 깨고 갔다.
<원기58년 3월12일>
도형 종재식
세상에 돈도 좋고, 명예도 좋고, 좋은 옷도 좋지마는, 그 좋은 가운데에 도를 깨는 것이 제일 좋은 보물을 갖은 사람이다.
예전에 중국에 방거사라는 분이 계셨다. 그의 따님인 영조가 12살에 아버지한테 수학하여 도를 깼다. 그런데 그때 세상 사람들이 영조가 아버지의 제자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영조가 가고 난 뒤 그가 아버지의 스승이라고 돌려졌다. 그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수백년 후에 영조가 방거사 보다 몇십 길이 솟았다고 말들 하였다.
인도에는 유마거사, 한국에는 부설거사, 중국에는 방거사가 있는데 이분들은 재가 부처님이다. 바로 집에 있는 부처님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영조를 불러 네가 공부를 해서 도를 아느냐 물으니, 「제가 어찌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하니, 아버지가 말하기를 「내 하나 물어 볼 테니 네가 대답을 해라.」 「明明百草頭에 明明祖師意」니라. 방 거사가 많은 제자를 데리고 도를 깨 가지고 문답을 보내는데 「영조가 아버님 틀렸습니다. 다시 정정하십시요」 하니 막혀 버렸다.
그 자리에서 힘을 못썼다. 얼마 있다가 더 이상 생각해도 더 밝힐 수가 없어 막혀 가지고 있다가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니, 다시 「명명백초두에 명명조사의」니라 하는데서 방거사가 깼다. 그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수백년 후에 영조가 방거사 보다 몇 십길이 솟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영조가 방거사를 모시고 지낸 것이 아니라, 방거사가 영조를 모시고 수학을 했다는 말씀이 있다. 천심을 깨고 안 깨고는 아는 사람이 아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십년 전에 이 사람이 장수서 나와서 내가 송대에 있는데 한 소식이 통해졌더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한 소식 통해서 밝아졌니라 생각은 했는데 그 한 소식이 통해져 조금 알기 때문에 방자한 기운을 띄웠다. 깨달아서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모멸이 여기는 눈치가 보여서 내가 신도안에 있을때 하루를 데리고 혼을 내어 내가 마탁한 일이 있고, 나 혼자만 알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에 무산이 와서 장수서 공부를 하면서 하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세상은 속일 수 없더라.
또 한정석 교수가 말하기를 선원에서 있을 때 여러 가지 말하던 것이 그 당시에는 시원찮게 들렸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한 소식 얻은 것 같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기 때문에 비장을 내 놓은 것인데 말하기 전에 말하면 이 사람에게 해가 돌아간다.
이 사람이 갔고 또 같이 지낸 몇 사람들이 말을 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밝힌다. 깨달을 각(覺)자가 이 사람에게 명예로준 호(號)가 아니다. 이 사람 깨친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깨치고 갔으면 그만이지, 만년을 살아도 깨지 못하면 그건 애들이고 하루를 살더라도 깰 것 같으면 어른이다. 어제 한 두분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참으로 세상은 아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라는 느낌을 얻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무엇이 바쁘니 무엇이 귀하니 해도 도를 아는 것같이 바쁘고 귀한 것이 없다. 아무리 명리를 가지고 다투고 야단해도 그것 다 꿈이다. 한숨 턱 끊고 드러누웠으면 빈 몸이다. 한 소식을 통해야지.
대종사님께서 천년 후라도 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것을 들을 것 같으면 아, 이건 여래다 이건 출가위 자리다 이건 무슨 자리다 하고 다 안다고 하셨다. 각산을 보고 여래 자리라고 여럿이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각산이 살아 있으면 그 사람한테 아첨하려는 소리 같으나 지금 그 사람은 갔기 때문에 그것이 참소리다.
대종사님께서 열반하신 뒤 지금 수십년이 지나고 선법사님께서 열반하신 뒤 얼마가 지난 뒤 그 어른 도덕이 드러나듯이 참으로 각산이 큰 도인이라면 앞으로 십년 이십년 백년 안에 이 사람을 알 사람이 있어서 드러내 줄 것이다. 지금은 너니, 나니 해서 내릴 사람이 있지만 백년 안에는 다 가 버리고 없다. 그때는 다투는 사람은 없고 그때 그 행적이라든지 글자 내 놓은 것을 보고 아, 이것은 한 수 통했다 하고 바로 알아 보고 올려놓는데 그때는 내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은 내릴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그처럼 살고 가는 것이다. <원기58년 3월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