均山 丁慈善 正師 - 해외 포교의 시창자로서

균산은 이 회상과는 숙겁의 혈연 법연이 지중하여 소년 시절부터 일원대도에 귀의하고 출가한 후 대종사님과 정산종법사님을 모시고 이 회상 초창기의 간난한 교단사와 더불어 동고동락하여 왔으며 왜정하(()()())의 수난, 8 15 해방의 혼란기, 6 25 동란 등의 그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혈기 있는 청년으로서 그에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의연히 본무를 다하였고, 두 차례에 걸친 교무부장 취임 천거에도 끝내 사양하면서 평범한 교역자로 일선 교화에 앞장을 서서 금산, 제원, 대전, 유성 등지의 초창 교당을 절약 절식, 근검저축으로 차례차례 일으켜 세웠으니 이는 대종사님의 이소성대의 정신을 그대로 몸으로 실천한 전형적 시범이였도다.

교단 4, 5백년 결복의 작업에 제1의 과제인 해외 포교에 있어 새 개척자인 포교사로서 남다른 서원을 세우고 미주(()())에 건너가서는 지하실에서 숙식을 하며, 낮에는 중노동, 밤에는 전법(()())을 하며 1인 3, 4역으로 그 임무 수행에 혈심과 혈성을 다하다 과로로 뜻하지 아니하게 순교를 하니 이에 대중과 함께 비통함이 크도다.

이제 균산 영가로 인하여 해외 포교의법 종자는 이미 뿌려졌으며 그 공덕으로 앞날의 전법은 더욱 든든히 싹이 트이리로다.

그러므로 균산의 그 거룩한 공덕은 미주에 빛나는 전법의 시창자로 영원히 기록 될 것이며 영가의 생애가 또한 멸사봉공으로 일관하였으니 그 생애야 말로 대중과 이 회상 모든 교역자의 사표가 되리로다.

균산이 최후로 남긴 말과 같이 「지금까지도 스승님들과 심심상련하였으나 이후에도 세세생생 이 회상 이 스승님들을 떠나지 아니하고 모시고 다니겠습니다.」라고 한 그 서원은 구천에 사무쳐 헛되지 아니하고 대종사님과 정산종법사님 그리고 삼세 제불제성과 파수공행(()()()())하여 함께 성불제중하리로다.

이제 남은 업력 모두 청산하고 대안정으로 일체를 해탈하되 ()()=생사와 거래가 없는 자리를 비추고, ()()=일체가 돈망한 그 자리를 양성하고, ()()=대무상행을 행하여 삼계의 대도사가 되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원기60년 2월6일>

()()에 있는 균산에

대안정으로 일체 해탈하되 관공, 양공, 행공 공부로 하십시오.

()() : 생사와 거래가 없는 그 자리를 비추어 볼 것.

()() : 절대의 그 자리를 기르는 것.

()() : 대무상행을 행하는 것이다. <원기59년 8월16일>

균산 종재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균산이 조금 일찍 입적하여 서운하나 생명은 제한이 있는 것이라, 여기 있어도 죽고 미국에 가서 오지 아니한다 해도 죽는다. 그러나 균산은 큰 일 하고 갔다. 콜롬부스는 미대륙을 발견했고 균산은 일원대도를 미국에 전하고 왔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보다 그 역사가 빛나지 않겠느냐? 여러분들 이와 같이 역사에 빛나는 형제 두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아육왕이 부처님을 돕기 위하여 살 한쪽을 떼어 드렸는데 균산은 원불교를 미국에 전하기 위해 생명을 바쳤다. 해외 포교상 첫 순직자이다. 해외 포교상 길이 빛날 것이다.

균산을 처음 미국 보내려고 할 때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헌타원과 이재경 교무가 수속비, 여비, 생활비 등 200여 만원을 밑받침해 줌으로써 가게 된 것이다. 그 돈이 돈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 없다. 교단이 생기고 법이 처음 전해 졌으니 그들의 공도 막대하다. 그러니 전일에 있었던 섭섭한 것들을 모두 풀어서 선업 결연(()()()())하기 바란다. 또한 이 일이 균산을 크게 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원기60년 2월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