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山 丁光薰 正師 - 여래 應現自在하는 자재불을 서원

오호라 중산 은형제(()()())여!

과거 40년전을 회상하니 은제(()())의 첫 출발할 때에는 부덕한 나에게 전무출신의 연원을 달았고 그로부터 대종사님의 법을 받아 교단사를 엮으며 모든 일이 동고동락하였으며, 특히 서울출장소 근무 당시는 8.15 해방을 맞아 그 후 건국의 초에 교단 만대의 기반을 세우기 위한 정교동심의 어려운 일들을 은제가 많이 맡아서 일했으며, 6.25 동란시에는 총부 사수에 그 사명을 끝까지 다했도다. 또한 정산종법사님이 미령(()())중에 계실 때에는 교정의 중대한 일들을 원만하게 운영하여 교단의 체제를 더욱 확립시켰으며, 교단 반백년 기념 사업 추진이나, 서울 기념관의 어려운 문제는 은제(()())의 뛰어난 역량과 정성으로 수습해 냈었으나 그로 인한 정력 소모가 마침내 은제의 건강을 잃게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대중은 중산의 건강 회복을 교단사로 알고 회복을 염원하여 왔었다. 근간에는 정양의 도와 조섭(調()())으로 인하여 많은 회복이 보였으므로, 우리 대중은 다 함께 기뻐하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교단의 중책을 책임지고 일해 줄 것으로 의논하였으며, 월여전(()()())에는 그 일에 대한 만반의 계획이 있어 그 기대가 자못 컸었다.

그런데 이 뜻 아닌 변이라니, 이 웬일인고? 그러나 나는 영천영지 영보장생(()()()()()()()()) 만세멸도 상독로(()()()()()()())하는 자리에서 은제(()())를 위하여 한 글로써 영겁을 다시 약속하고자 하는 바이로다.

천하 사람들이 다 속박에서 출생입사(()()()())하지마는 우리는 세세생생 해탈 거래하기로 서원하고, 천하 수도인들이 걸림이 없는데[()()]로 끝을 마치지마는 우리는 무애한 가운데 은법(()()) 부모 형제에 줄을 놓지 않는 유애의 줄을 놓지 말아서 세세생생 무애무불애(()()()()())해서 여래로 응현자재하는 자재불이 되기를 서원할 것이로다. 또한 천하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도리에 밝아서 시비이해에만 분명하지마는, 우리는 진리의 대소유무에 통달하는 진리의 눈이 밝기를 서원할 것이로다.

출가위의 첫 조항에 대소유무의 이치를 알아서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하는 것이라 하셨으니 이 원리로 복혜양족의 원천을 뚫는 것임을 알 것이며, 또는 사사무애(()()()())의 법계를 통달하여 전세계를 선법화(()()()) 불은화(()()())하는 대종사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일원대도를 세계 만방에 고루 전하는 대법 사도가 되기를 현제(()())의 영전에 비는 바로다.

()()()()()하고 ()()()()()하여

()()()()()라사 ()()()()()로다. <원기62년 1월20일>

중산의 열반 소식을 듣

청천벽력의 소식이다. 어허 이 웬일이냐?

중산이 큰 임무를 띠고 왔다 큰 임무를 띠고 갔다. 나와 같이 큰 일 많이 했었다. 앞으로 언젠가 또 그렇게 큰 일 할 것이다. 의인이었다. 모든 면에 형타원님의 예로 예우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큰 일들로 건강이 약해졌고 정력 소모도 많았다.

내가 그것을 염려했었는데 앞으로는 전무출신들 건강 관리를 잘해 줘야 하겠다. <원기62년 1월17일>

중산정사 빈소에

큰 법문을 하고 갔다. 평상시 다망한 공사(()())로 법문을 안할려고 하더니 뭉쳐서 큰 법문을 떨치고 갔다. 대종사님 계실 때의 일을 범산이 아는가 모르겠다. 제문 선생이 몇 해 됐는가? 한 40년 넘지. 그때 내가 큰 법문을 듣고 그 힘으로써 참 공부를 하였다. 또 이번 중산 현제의 법문이 큰 법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같이 뭉쳐서 공부 사업을 더 해야 되겠다.

내가 진안에 상사(()())가 있어서 다녀오다가 보화당에 들렀다. 그 당시 제문 선생은 보화당 약방에 근무하셨다. 그 분은 평소 나하고 다정한 동지 사이로 지냈던 터라 지방 출장 갔다 오는 길에 꼭 들리곤 하였다. 그 분이 보고 싶어 들어갈 정도였다. 왜냐하면 대종사님 동정도 물으며 그 동안 공부한 이야기도 묻곤 하여 서로 공부 도반으로 지냈었다.

그날 저녁 상사에 여러날 시달리고 와서 몸이 피로하였다. 그 분도 늦게까지 일을 하여 피곤했는데, 밤이 늦도록 서로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열한시경이 되어 유리창을 닫고 둘이 잠이 들었다. 곤하여 잠이 막 들었는데 밖에서 제문 선생을 찾는 소리가 들려 내가 깨울려고 흔드니 아! 그냥 가 버렸더라.

아! 그런 허망한 일이 있는가. 이 분이 나한테 친절하고 동지로 여기더니 최후로 나한테 법문을 전할려고 나를 이렇게 불렀구나. 생사가 본무상(()()())이다. 참 가고 오는 것이 이런 것이니 부지런히 수신(()())하고 공부를 해야 되겠다 하고 그때 한번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다.

며칠전 중산과 신도안에서 만났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법열과 안정감이 충만해 보였다. 중산은 그 동안 항상 바빴다. 무슨 일이나 좀 천천히 해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때에 중산이 나보다 더 찬찬한 태도를 보이었다. 중임을 맡기로(교정원장) 하는 중간에 그렇게 태연하고 안정된 것을 보고 나는 교단의 경사인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거년부터는 내실(()()), 저력(()()), 세근(()())의 세 가지 방향으로 교단과 각자의 실력을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나는 중산에게 우리가 그 동안 너무 바빴고 교단도 밖으로 너무 드러난 것 같다고 말하고 우리가 일보 후퇴하여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짐으로써 우리 회상을 만세의 반석 위에 올려놓자고 하였다. 그리고 교단의 정사(()())는 중지(()())를 모으고 중의(()())를 좇아서 모든 일을 오직 공사로써 처리하되 앞에서 이끌어 나가는 것보다 뒤에서 알뜰히 밀어 주어 한 사람의 낙오도 없게 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뜻 밖에 하섬에서 급거 열반 소식이 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천명인데 중산이 나에게 큰 법문 하나를 남겨 주기 위해서 그 모든 계획을 세웠었다고 생각하였다. 중산은 기위 대종사님 밑에서 은자(()())의 의(())를 맺었었고 40년 동안 남음 없는 정성을 이 회상에 바쳤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오고 갈 길을 자신이 여일하게 잡았을 것이다. 따라서 중산 개인을 위해서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다. 다만 우리의 교단 일에 대해서 우리 각자가 금년부터는 더욱 일보 후퇴하고 더욱 서로 양보하여 교단 만대의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가기로 단단히 작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은 교도들만의 교단이 아니요, 인류만의 교단도 아니요, 일체 생령의 교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의 진로 여하에 일체 생령의 전도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산의 영로를 위해서나 생령들의 전도를 위해서나 우리 머리에 타는 불을 우리 스스로 끄고 우리 앞길의 밝은 등불을 우리 스스로 밝혀야 한

우리가 심신을 과하게 소모하지 말고 평상한 마음과 평상한 행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 교단이나 개인이나 착실하게 모든 일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가 의논하여 세웠던 방향이 결코 헛되지 않고 이것이 교단과 세계의 큰 방향이 되어 중산이 뭉쳐 준 최후 법문에 한결 빛을 더하게 하여줄 것이다. <원기62년 1월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