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山 邊衆船 - 解脫이 是眞寶라

이 나라가 풍운과 온갖 시련이 점철되었던 시기 선산당께서는 청장년으로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구국의 혈성을 다 하시다, 일정하 해외로 망명하여서는 상해 임시정부 요인으로써 김구 주석을 모시고 독립 운동을 하였습니다.

한 때는 수년간 옥고도 치르셨습니다.

해방 후에는 뜻한 바 있어 전남 대학교에 투신하여 후진 육성에 전력하고, 소년 시절 입산 수도하였던 숙겁의 불연 따라 전남불교회 회장을 맡아 불교 부흥을 시키는 알뜰한 불제자의 역할을 하시던 중, 기러기 떼가 계절 찾아 한데 뭉쳐 가듯이 때 되어서 일원대도의 회상 찾아와 3천년 전 옛 스승 다시 받들어 늙으심을 잊으시고 7보가 시비진보요, 해탈이 시진보라는 자각에서 세욕(()())을 던지시며 전무출신으로써 봉법 봉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원대 한의대 신설 때 초대 학장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고, 또한 인술로 재가 출가의 병치료에 가시는 그 날까지 노력하셨으며 법은사업회장으로 그 사업 육성에도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선산당 영가시여! 국가와 교단에 헌신하신 그 역사적 업적과 신의가 고금을 일관하고 대의가 매사에 밝았던 그 생애 길이 빛나고 후진들이 사표가 될 것입니다.

영가이시여! 생사와 거래가 없고 노소와 대소가 없는 본래의 그 한 마음으로 이 회상에서 또 다시 봉법 봉도하시었으니 그 마음으로 또 걸림 없이 갔다 와서 대불과를 성취하소서.

()()()()()이요, ()()()()()로다.

()()고로 ()()하고 불멸고로 불생이로다.<원기65년 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