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의 출가는 옛 인연, 옛 고향을 그대로 찾아온 한 마음의 출가였으니 참으로 거룩한 입지(立志)였도다.
결혼을 수일 앞두고 아버님이신 근산법사에게 인사드리러 총부에 왔다가 대종사님이 주세성자이시고 이 공부 이 사업이 영생에 더 없이 큰 공부며 큰 사업임을 자각하여서 그대로 머물러, 가는 그 날까지 두 마음 없이 몸과 마음을 온통 바쳤으니 그 신성 그 서원 구천을 뚫고 솟았도다.
영가의 바쳐 온 삼십여 성상 법랍을 더듬어 본다면 한점의 티와 흠이 없고 또한 흐트러짐이 없이 수도에 정진하는 노력의 모습이었도다. 제도 사업에는 다대와 대신동 교무를 출발로 기장, 울산, 포항, 언양, 경주, 영천 등의 연원교당을 냈고, 특히 경주는 이차돈 성자와 원효대사 최수운 대신사의 성지로 불불계세(佛佛繼世) 성성상전(聖聖相傳)하는 불연지(佛緣地) 이므로 교단적으로 일찍이 교화가 꼭 이루어져야 할 곳인데 수천 년의 전통 불교 신앙으로 우리 법이 뿌리 내리기 대단히 어려운 곳이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곳에 옛 인연들을 찾아 교화의 기본을 확립하여 대종사님이 새 부처님이시요 우리 회상이 큰 회상임을 알고 받들게 하였으며, 결국 그 교당에서 교화에 전력하다 순직했으니 이차돈 성자의 순직과 무엇이 다르리오. 장하고 빛나는 수도의 생애였도다.
영가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알고 수행하며 활용했었으니 어둠이 없었던 그 마음 더욱 밝히고 걸림이 없는 그 마음을 더욱 조촐히 하여 세세생생 스승과 회상과 법연을 굳게 하여 불조정전의 심인을 얻고 여래 정법 안장을 밝히며 일원대도의 정맥정통을 이어가는 대서원을 이때에 더욱 굳게 세워 오는 세상에는 큰 성자 되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기원하며 다음 법구로 영로를 당부하는 바이로다.
有碍中無碍하고
無碍中有碍하며
無碍無不碍하여
是卽眞無碍로다. <원기67년 3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