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陀圓 李正和 正師 - 深深皎皎 一聲鷄

불보살들은 어묵동정간에 육근을 통하여 시방일가 사생일신의 대서원 아래 공성 성불제중하고 제생의세하는 한 마음으로 삼세를 일관하고 구제의 기연 따라 혹은 동, 혹은 서, 혹은 남, 혹은 북에서 출현합니다.

달타원법사는 정산종법사님과 혈연을 같이하여 숙겁에 약속했던 불연을 기다리다가 정산종법사님께서 대종사님과 제우(()())하신 후 옛 법연들이 성주 성지를 중심해서 일시돈발(()()()())함으로써 준타원 이운외, 구산, 중타원, 훈산 이춘풍, 경타원 정삼리화 법사님들과 주산, 항타원종사님 등 삼종사(()()()) 십법사(()()())가 그 가문에서 나왔고, 많은 후손들이 큰 불보살로 속속 배출되고 있습니다.

달타원법사도 그 중 한분으로 대종사님께서 변산 성에서 생애 최대의 내핍 생활로 최고의 간난을 겪으시며 고고히 교단 만대를 통하여 제생의세하실 대경륜과 포부를 실현할 계획을 수립하며 제법하실 때 항타원법사와 자매로서 숙겁에 올리고 바쳤던 그 서원과 신성을 변제법성지에서 어린 불보살로 다시 이어 바쳤으니 교단 어린이 교화 시초였으며 교단 미래의 희망으로 재롱을 부림으로서 새부처님 대종사님께 큰 위안과 기쁨을 드리는 효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분 자매는 대종사님의 큰 기대와 관심 속에 훈증을 받으며 법기로써 싹을 틔우다 갑자년 총부 건설 후 19세의 나이로 교단 초창기의 주역으로 정식 출가했으니 구천에 사무쳤던 그 신성, 시방에 다북 차도록 키운 그 서원은 교단의 산 역사가 되어진 일생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장한 생애입니다.

달타원법사께서 출가 49개 성상 초창시의 교당들을 두루 거치며 운봉, 서성로, 봉덕교당을 설립했고, 종로교당을 개척하였기에 대구교구와 서울교구의 오늘의 교세에 크나큰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초대 영모원장과 감찰원장 등 교단의 교직을 두루 빠짐없이 거치며 피가 마르고 눈물이 마르도록 갖은 어려움을 당하다 명실공히 사무여한의 전무출신이 되어 위법망구, 위공망사로 초지일관하여 교단의 대의를 세워 주시어 후인들의 사표가 되었습니다. 이 어찌 역사에 길이 남지 아니할 거룩한 생애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중병으로 최대의 위기에 놓여 서성로교당에서 치료받을 때 자매 분들이 애타 하며 혈성을 다해 간호하였던 일 내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그때의 그 지극한 정성에 대하여 영전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치하하는 바입니다. 또 금년 5월6일 천주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면담 전에 심심교교 일성계(()()()()()()())라는 법구를 써 보내며 중병도 잊고 스승님들의 큰 뜻을 같이 받들려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원을 올리다 면담 3일전 나에게 보고하기를 총부에서 서기가 뻗치는 것을 보게 되어 교단과 세계의 경사인 줄 생각되어 매우 기뻤었다고 말하였을 때 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달타원법사의 그 기원의 힘, 진리에 길이 새겨져 정교동심의 교단적인 큰 목표를 성사시키는데 새벽의 샛별처럼 빛나는 한 점이 놓아질 것입니다. 일생을 그대로 대봉도(()()())했습니다.

달타원법사께서 이제 스승님의 부름을 받고 잠깐 자리를 옮기니 그간 같이한 모든 정리(()())를 생각하면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 없으나 스승님 따라 또 큰 일하러 갔으니 기쁘게 보내겠습니다.

아주 평안히 오고 가시기 바라며 다음 법구로 영로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로다.

()()()()()하니 ()()()()()이로다.

푸르고 넓은 바다는 만리를 통하여 비어 있는데,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또한 하늘도 없도다.

바위 위에 한 화신이 되니, 안중에 시방이 궁굴더라.

<원기69년 8월25일>

달타원법사 영전

출가자의 도 두 가지는 위법망구 위공망사이다. 법을 위해서 몸을 잊고 공을 위해서 사를 잊는다는 말이다.

달타원의 위법망구 위공망사는 만점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분에 대해서 더 깍을 것이 없다. 감찰원장 재임 2년 동안에 사람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잘못이 있었듯이 허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고의적으로 일방적으로 틀린 점은 없었다.

육신은 갈렸지만 정령만은 갈리지 않고 최고의 결산을 짓는 이 자리가 되기 때문에 심고 올린다든지 할 때 그 분의 잘못은 잘못했다 해주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주면 이것이 내생의 걸음이 되고 복조가 된다.

달타원법사가 큰 법문을 하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법문의 그 진의를 알아야 한다. 일생을 사는데 달타원이 계신다면 본인 입으로 생방송을 하라고 하겠는데 안 계시기 때문에 다른 입을 빌려서 하는 것이다. 모두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그 동안 사는 가운데 위법망구, 이 법만을 알고 내가 몸을 바쳤느냐. 위공망사, 공을 위해서 사를 잊었는가 반성해 보자. 채근담에 「천하에 참 복을 지었더라도 한 생각 사심이 남아 있으면 흠이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일생을 살고 최후를 마칠 때 누구도 모르지만 본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법에 위법망구를 했다 위공망사를 했다 하는 것을 생각하며 살 때 그 사람은 진급이 되고 앞길이 열리게 된다. 매일 그날 잠잘 때 못 일어나면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위법망구 위공망사를 했느냐 생각해서 거기에 만점을 얻으면 그 분은 잘 산 분이다. 우리가 이런 스승을 보내면서 이 어른도 결산을 시키지만 우리도 결산을 시켜야 하겠다. 항타원법사하고 달타원법사하고는 같은 형제분이라도 정명도 정이천 형제와 같이 이 분 형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 분들은 말할 수 없는 뚜렷한 한 책임을 갖고 나오신 분들 같다. 그런데 이 어른들의 과거를 생각하여 보면, 정산종법사님과 주산종사가 탄생하실 때, 그 어른의 수양력과 인연도 지중하셨지만 이 달타원님의 고모할머니 준타원 이운외의 공이 더 클 것이다. 대종사님의 상수 제자 좌우보처를 만들어 내 놓으신 공이 이 분한테 있다. 준타원 이운 외할머님이 구산법사님하고 혼인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 혼사가 오가던 중 신랑집 어머니가 열반을 하게 되었다. 그 신랑집에서 말하기를, 삼년상을 지내지 않고 혼인을 할 수 없으니 장례를 미루고 혼인을 하자고 사돈간에 공사로 합의를 보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운외할머니가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혼인도 급하지만 시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혼인이 급하다 하여 시집간다면 도리가 아니다.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3년상을 다 마친 뒤에 혼인을 하여 선종법사님과 주산종사를 낳으셨다.

예전에 불보살들이 혼인을 하여 100일 지내고 기도를 올리고 아들을 낳으면 큰 대인 만난다고 하였다. 강감찬 장군도 그렇게 해서 낳은 분이다. 강감찬의 아버지는 훌륭한 양반이 못되었다.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훌륭한 아들을 낳을려면 혼인을 한 뒤에 100일 동안을 부부가 거처를 함께 하지 않고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큰아들을 낳으려고 100일 뿐 아니라 1년을 기도하였다. 그래서 부부끼리 별거하고 살았다. 사방에서 이상한 놈이라고 손짓하고 쫓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궁지에 몰린다 할지라도 나는 큰아들 하나 낳아야지 흐지부지 자식을 낳을 수 없다」 하여 기도 정성을 올린 후 1년 뒤에 강감찬을 낳았다. 부모가 자녀를 하나 낳기 위해서 1년간 정성을 올려 낳았기 때문에 한 나라의 주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준타원님이 3년 이상을 지나고 나서 결혼을 하여 정산종사님과 주산종사님을 낳으셔서 대종사님의 좌우 보필이 되게 하셨다.

그 어른이 달타원님의 고모할머니시다. 그래서 정산종법사님이 18세시 대종사님을 뵙고 전 가족이 전라도로 이사갔는데, 달타원님 아버님 이춘풍님이 가지 말라고 말리러 왔다가 대종사님을 만나 뵙고 이 회상에 귀의하셨다. 그리고 그 두 집이 전라도로 이사를 왔다. 그때 딸이 6세, 4세 였다. 정산종법사님 주산종사 형제분이 봉래정사에서 대종사님을 받들었고 항타원 달타원 자매는 4살, 6살이었으니 회상의 문열이다.

그러므로 두 어른은 어느 누가 보든지 교단의 맥이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흐지부지 오다가다 온 분들이 아니다. 맥맥히 흐르는 맥을 잡고 지금까지 살다 가셨다. 그러하기에 이 분들의 거룩한 그 일생은, 특히 정녀들의 효시가 된 분들이므로 우리가 길이 사당에 모시고 추모하며 만대를 받들어야 하겠다. 방금 전에 말한 대로 위법망구 위공망사에는 다 만점이지. 거기에 대해서는 두 어른들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두 자매의 어머니 정삼리화 할머니를 정산종법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정삼리화 씨는 담이 항마판이고, 준타원 할머니를 큰판이라」고 하셨다. 일생 지내신 것을 오다가다 뵈면 같은 형제분이라도 두분은 같이 통합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셨다. 그 어른의 위대한 점이라고 하는 것은 준타원 사모님이 출가위라면 이 분은 여래위다.

춘산 이춘풍선생님도 경상도 선비라 한번 결정한 뒤에 논 팔아서 전라도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기를 쳐 허망하게 싹 돌려 버렸다. 그러나 준타원 사모님이나 그 어른들이 대종사님 따라 왔다가 우리가 밥 거르게 되었다는 불평 한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다.

순봉 영봉도 부모님 뜻도 받들어야 하지만 할머니 뜻도 받아야 된다. 대종사님께서 준타원은 「앞으로 한 회상을 맡을 만한 큰 법기가 된다」고 하셨다. 또한 그 어른은 보통 큰 분이 아니라 했다. 앞으로 만대를 두고 대종사님 초창에 선종사님 주산종사님이 좌우 보필이 되셨고, 또 항타원 달타원이 좌우 보필해서 이 회상의 문을 활짝 열으셨다.

또 대종사님이 부르시면 어디든지 간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런 어른들은 가고 오는 것을 억지로 누가 말 못한다. 다 뜻이 있고 일이 있기 때문에 가서 크게 되시기를 바랄 뿐이다. 평생에 이 어른의 서원이나 신심이나 공부심을 후진으로써는 깊이 사모하고 받들어야 하겠다. 우리 전무출신들도 마찬가지만 이 분들의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정신을 참고하여 내 일생에 표준을 삼고, 기위 이 회상에 몸을 내 놓았으니 이러한 뜻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하면 이 어른들에게 보은이 될 뿐 아니라 이 회상의 밝은 빛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항타원, 달타원, 육타원이라든 지 그 몇몇 분의 은혜는 내가 영겁을 통해서 잊지 못할 그런 은혜를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는 보답을 조금도 못했지만 내가 공적으로 보답을 함으로써 이 분들 장래에 뜻한 바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 드린다.

또한 마지막 가는 길에 ()()()()(), 푸른 바다 만리가 푸르게 텅 비었으니 우리도 마음 가운데 어떠한 찌꺼기를 두어도 안된다. 명예를 두어도 안되고 욕심을 두어도 안되고 차차 다 비어야 한다. 자성 본체에 합일되어 가지고 찌꺼기가 있으면 크게 튀들 못한다. ()()()()()()()()()()이로다. 원래 내가 없는 것이라.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 생각 좋은데 끌릴 것도 없고 미운데 끌릴 것도 없고 무아무인천이다.

()()()()()하니 ()()()()()이다. 우리 눈 속에 시방을 궁굴리고 있어야 한다. 시방세계를 내가 움직이고 있어야 큰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욱 공부 잘하셔서 항마는 다 눌러서 다 뺏어 버려야 한다. 출가위라는 것은 최후까지 다 받쳐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요. 악을 장차 제거하려고 함에 풀 아님이 없다. 내가 제일 가깝고 좋게 하는 것이 악마가 되니 다 끊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다 끊는 것이 최고가 아니다. ()()()()()()()라. 좋게 보니 다 꽃이고 꽃 아님이 없다. 나쁜 것만 나쁘게 보고 좋은 것만 좋게 보면 그것 아니다. 악장제거 무비초요, 호취간래 총시화라. 좋게 보니 다 꽃일레라. 그러기 때문에 자신에 있어서는 전탈(()())해서 다 뺏어 버려야 한다. 무엇이 자기를 위한다고 좋다고 해도 그것이 다 사마악도가 가는 길이 되기 때문에 자신에 있어서는 다 끊고 남에게는 그럴 수 있다고 인증해야 한다.

여래위는 자유자재한다. 항마도 천층이고, 출가도 천층이고, 여래위도 천만층이 된다. 그러므로 4차 교무 훈 대중은 다시 한번 허공법계에 대서원을 밤 낮 없이 올려야 되겠다. 우리가 대종사님 선종법사님이나 주세불, 이런 어른들을 만나고, 이런 회상을 만났을 때, 대서원을 허공법계에 바쳐야 한다. 그래서 대정진을 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 있는 그것만 가지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대정진을 해서 대불과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로 할 것 같으면 대불공을 해야 한다. <원기69년 9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