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님께서 대각을 이루시기 전에는 주소일념(晝宵一念) 성도(成道)의 걱정이시다가 대각 후에는 회상을 펴고 교화하실 일이 더욱 걱정이 크시었습니다.
그러므로 회상의 여명기에 주세성자를 알아보고 혈통과 심통으로 신성을 바치고 서원을 올리는 그 제자들은 숙겁에 약속했던 법연들로서 교단의 중심이 되고 빛이 되어 산 역사로 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역사에는 십대 제자와 천이백오십 대중이 공자님 역사에는 10철과 72현이 예수님 역사에는 12사도가 기록되어서 법통을 이어 받들게 한 그 거룩한 정신이 만대의 사표가 되게 하였습니다.
융타원법사께서는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이루시고 회상을 펴실 때가 선후천 교역기로서 말(末)과 초(初)의 혼돈이 심하고 본과 말이 전도되어 옳은 것과 그른 것, 밝은 것과 어두움을 분별을 못하여 반상 차별로 크고 바른 사람들을 몰라보는 그 때에 경성에서 명문가의 딸로 그 당시 여성으로는 아주 드문 고등교육을 받은 처지에서 외조모 민자연화, 모친 기타원 이성각(基陀圓 李性覺), 구타원 대봉도님들과 경성에서 대종사님이 주세성자이심을 알아 뵙고 신성을 바치고 서원을 올리었으니 대종사님의 그때의 그 기쁨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이미 영생을 책임지셨고 아끼고 사랑하심이야 무엇을 비하리까. 거룩하고 장합니다.
또한 17세의 소녀로서 출가하여 56개 성상 여자교무 제1호로 교단 초창시 교당들을 두루 거치며 교당의 기초를 다져주는 동시에 법연들을 다 창립의 알뜰한 주인들로 키우셨습니다. 또한 의산 조갑종(義山 趙甲鍾) 법사와 같이 부기 학원을 나와 교단 경리 문서의 체계를 세워 일정시 큰 고비를 넘기게 하였고, 주산종사와 전음광선생과 일원문화 개척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 하시었으니 회상 여명기에 있어서 여러 방면에 개척자로서 호법을 다 하시었고, 말년에는 일체 도방하로 해탈해서 내생 준비를 하였습니다.
순일한 정성으로써 마음은 대종사님께 바치고 몸은 회상과 후진에게 바쳐서 천신만고와 모든 역경을 감내하고 초탈하시어 때로는 남으로, 때로는 북으로, 때로는 서로 오고 가시며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교화의 발판을 튼튼히 하시었으니 융타원법사의 그 빛나는 일생은 한 말로 [형설지공(螢雪之功) 만대 사표(萬代師表)]였습니다.
융타원법사이시여! 이제 저 원적무별(圓寂無別)한 청정법계(淸淨法界)에 편히 쉬시다가 오시어 대신성과 서원으로 스승님의 경륜과 포부를 시방세계에 두루 펴는 주인공 되시고 일념만년(一念萬年) 우만년(又萬年)의 정성으로 더욱 정진하시길 빌며 다음 법구로써 영생 길이 열리도록 기원합니다.
恒念精一 不斷之精誠하고
常行有餘 不勤之用心하소서.
항상 정일한 생각이 끊임없는 정성이 되게 하고,
늘 여유 있는 행동을 하여 다함이 없는 마음을 쓰소서.
<원기69년 12월10일>
융타원 영전에
대종사님께서 [정정요론(定靜要論)]을 지으시고 서문을 모두 지어 보라고 하였다. 그때 한학을 많이 하신 어른들이 여러분 계셔서 서문을 많이 지어 왔다. 그러나 모두 적절하지 않아 대종사님께서 직접 지으셨다. 「인생의 목적은 수양에 있고 수양의 목적은 연구에 있고 연구의 목적은 혜복을 구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책이름이 「수양연구요론」이다. 다른 말로 「정정요론」이라 지어 주셨기 때문에 이 책의 골자가 정정(定靜)이다.
정정(定靜)을 해석할 것 같으면 내정(內定)과 외정(外靜)인데 정할 정(定)자는 한 마음이 일정심(一定心)으로 한 서원을 세워 공부 사업을 하여 성불제중의 대원을 세우는 대서원 하나가 서진 것이고, 그 서원이 서졌지마는 풍정파상용(風停波常湧)이라 바람은 잤건마는 물결은 출렁거린단 말이다. 바람이 일어나듯이 5욕7정이 꼬리를 물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주저앉히는 것은 고요 정(靜)자 공부이기 때문에 내정정 외정정이다. 내정정은 일정심이 된 것이고 외정정은 염불을 하든지 좌선을 하든지 하여 고요하게 만드는 것으로 같은 종류라도 내정, 외정 둘이 있다. 또 하나로 뭉쳐 말하면 정정은 내정정이고 활동은 외정정이다.
그러므로 금년 신년 법문에 대정정(大定靜) 이후에 대활동(大活動)하고 대 활동한 후에 다시 대정정해야 된다는 말을 하였다. 이것이 정정요론의 최고 강령이고 핵심이다. 그러므로 가만히 앉아서 염불 좌선으로 정하고 고요하게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된다. 내정 외정이 있지만 활동을 하여, 세상에 일을 하는 가운데 활동을 하면서 정정을 해야 참으로 정정(定靜)이 된다. 내정정 외정정은 만대의 수양의 법으로 내(內) 가 운데 정정이 있고 외(外) 가운데도 정정이 있다.
그러므로 대종사님께서 60년 전에 구타원님 보고 만덕산에 땅 19만평을 사라고 하여 사 놓으셨다. 그 동안 교단에 더 사서 지금은 약 40만평이 된다. 우리들이 나이 먹고 수양기가 접어들거나 또 나이가 젊다 할지라도 몸이 아프다 든지 할 때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지 쉴 경우 이러한 훈련원에서 휴양하여야 한다.
사람이 일생을 사는 가운데 내정정 외정정을 놓지 않아야 최후 갈 때에 껍질만 남지 않는다. 아무리 공부한 큰 도인이라도 내정정만 해서는 안된다. 외정정을 해야 되는데 외정정 가운데도 동정이 있다. 정할 때 내외정(內外定)이 있고, 동할때 내외정(內外定)이 있기 때문에 대정정 이후에 대활동하고 대활동한 후에 대정정해야 된다.
그러기로 할 것 같으면 내정을 하면서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도 하고 생활을 하여야 된다. 전국에 10여군 데에 훈련지를 마련한 것은 마음이 아프다든지 몸이 좋지 않을 때 휴양하여 본인에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1주일이라든지 1달이라든지 또 1년을 쉰다든지 하여 정정한 뒤에 뛰면 천배 만배 뛸 수 있을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5년간 제법을 하시고 나오셔 가지고 총부에 계시다가 다시 변산에 들어가시어 3일을 지내니까 예전 당신이 다시 돌아오더라 하셨다. 아무리 근기가 뛰어난 주세불이라도 정신을 쓰면 소모되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열반하시기 3년 전에 늘 법문이 그것이다. 「내가 신명은 다 닫혀지고 지각으로 살아간다」 하신 말씀이 이 법문이시다.
그런 부처님도 그런데 하물며 보통 우리들은 내정정 외정정이 안되면 안되기 때문에 교단적으로 그렇게 해야 되겠다. 예전에 여기는 허허벌판이었다. 총부 오는 중간쯤 집 하나 있었고 황등 가는데 허리다리 쯤에 집 하나 있었다. 여기가 바로 산중이었는데 이제는 여기가 도시가 되었다. 교역자 훈련이나 특별한 훈련은 총부에서 하더라도 때로 1주일 혹은 얼마 동안은 여러 군데 훈련지가 있으니 그런데 가서 쉬는 기간을 가지고 다시 뛰면 훨씬 효과적으로 뛸 수 있다.
그러므로 대정정 이후에 대활동하고 대활동 이후에 대정정하는 그런 기간을 갖는 것이 만대의 우리 법이 될 것이고, 이 법을 만대에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개인도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수양 시간을 가져야 한다.
대종사님께서도 조석은 죽어 가는 시간외에는 수양 시간을 가져라 하셨는데 그것이 무서운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대정정 이후에 대활동하고 대활동 이후에 대정정하는 것을 교단의 기본 방침으로 삼아야 하겠다.
한번은 이성각 할머니가 「수양연구요론」을 가져왔는데 양쪽 책표지가 다 떨어질 정도로 보셨더라. 그 할머니 얼굴을 보니 부드럽고 좋으신 연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하루 한번 책을 보아 나중에는 책가위가 문질러지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 책을 박물관에 기증하여 보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가 그 책가위를 새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 허허 보물이 벌써 깨졌구나. 그걸 그대로 두었더라면 박물관에 중요하게 보관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부의 표준을 대정정 이후에 대활동하고 대활동 이후에 대정정을 하여 수양을 좀더 크게 하고 내생에는 융타원님께서 그 지성이 무르익도록 빕시다.
<원기69년 12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