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혔음을 찾아 밝히고 희미해져 감을 바로 이어주며, 모름을 알게 하며 모두가 바른 앎을 갖게 하는 것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책임인지라. 오늘 묵산정사와 경산님의 걷고 간 길을 대중에게 다시 알려 경악 속에 애통히 보낸 마음을 달래여 보는 바이다.
묵산정사는 15세 연기(年紀)에 경성에서 부귀공명 다 떨치고 장한 서원으로 출가하여 대종사님께 은자결의(恩子結義)를 하고 시자로 봉법(奉法)하였으며, 주산종사에게 불경을 공부하였고, 교단의 미래와 대종사님의 크신 뜻을 해외에 뻗치고자 해방과 더불어 아타원법사를 서울 사대에, 헌타원법사를 숙명여대에, 균산법사와 우타원법사를 동국대에, 숙타원법사를 숙명여대에, 죽타원법사를 성균관대에 각각 수학시켜, 오늘에 있어 해외 포교의 초석을 다졌었다.
또한 고고(呱呱)한 초창시 경성지방의 전무출신 어머니 구타원 대봉도와 이모 기타원님, 이종 누이 융타원법사, 그리고 육타원종사와 팔타원 대호법, 삼매화, 지환선님 등이 형제의 정의로써 뭉쳐 6.25 동란 속에서도 경성에 있어서의 제생의세 교화의 문호를 크게 지키고 열었었다. 이 또한 사무여한의 사수가 아니고 어찌 오늘의 서울 교화가 존립했을까.
그리고 이 나라의 여성계에 있어 김활란여사가 교육계 일인자라면, 팔타원님은 자선사업계 일인자이시다. 그러므로 팔타원님은 수백명의 전쟁고아들의 전도를 두 어깨에 지고 해외에서 활동하였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또 다시 6.25 전란을 당했었다. 그때에 팔타원님의 독자인 어린 필국(弼局)을 묵산법사가 책임지고 별장인 장포동에 임시 피난 유거 보호했었다. 그러나 이 어인 일인고, 교단 장래에 있어 크게 기대하고 바랐던 아까운 두 인재가 뜻 아니게 희생되고 말았다. 그 거룩한 성심을 모르고 희생했었으니 오호라, 창천이 무심했었도다. 그러나 영겁다생에 전업을 일시에 다 소멸하고 다시 만대에 있어 새 불사, 새 불종자가 심어 졌으니 전화위복의 경사며 만대의 광명이 솟으리로다.
두 동지여 더욱 들으소서.
대사업은 천신만고(千辛萬苦)중에서 성(盛)하고 대공부는 천인만내리(千忍萬耐裡)에 숙(熟)하는 것이니 두 동지의 그 살신성인의 대불사와 교단 동량의 5대 법사 교육의 공으로 영천영지(永天永地) 그 공덕해(功德海)가 무량할 것을 우리 모두가 일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원기70년 5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