誠山 成丁哲 宗師 - 교단 창립 정신의 표본

대종사님께서 회상을 창립하실 때,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혈심혈성으로 고락을 같이했던 제자들이 앞에 떠날 때 그 애통한 성심 크심을 뵈었습니다. 선종법사님께서 혈연과 법연을 같이하여 회상 초창에 온갖 가난과 생사 고락을 같이 하던 주산종사를 보낼 때 그 애통하심 또한 깊고 큼을 뵈었는데, 오늘 원로 은법형(()()())님이신 성산종사께서 떠나시니 두 스승님의 깊고 두터운 정의 속에 남모르게 애통하셨던 일이 더욱 더 마음에 사무쳐집니다.

우리가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회상 창립의 기초를 다질 때나 초기 교단의 온갖 고난과 해방 후의 혼란과 6.25의 전난 속에 이 회상을 받들어 지키고 창립하여 올 때, 천신만고의 온갖 간난을 같이하며 오늘의 교단을 바라보게 된 것을 생각하면 그 정이 굽이굽이 사무치고 길이 잊을 수가 없으며, 더욱이 성산, 형산 두 은법형님들께서는 영산 성지를 20,30년간 서로 교대 근무하는 동안 해방과 동란시 사수하여 오늘의 성지가 있게 했으니 길이 잊지 못할 거룩한 성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단이 이루어진 것은 회상에 바친 혈심 정성과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결과라 생각할 때 성산 은법형님의 그 거룩한 성자의 혼이 산 역사로서 교단 구석구석에 나타나 있음이 새삼 뜻있게 보여집니다.

성산종사이시여! 성산 은법형님께서는 숙겁에 제불제성과 깊은 약조를 한 법연인지라 이 회상에 참여하기 전에는 증산교에 인연이 있어 전 가족이 그 교의 중임을 맡았었고 특히 성산 은법형님은 재무 전담자로 부귀 속에 있었으나 정법 회상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던 중 먼저 대도회상에 귀의하신 어머니 건타원 송학경 법사와 형수 추타원 조창환 법사의 연원으로 대종사님을 뵙고 대종사님이 주세불이시고 이 회상이 대도정법 회상임을 바로 깨닫고 두 마음 없이 귀의하고 출가를 단행하였습니다. 어제의 재무부장이 오늘은 밭에 나가 손수 일하는 일꾼이 되고 어머니 건타원법사와 정토회원 인타원 이칠성법사는 남의 집에 일을 보아주며 생활을 유지하고 그것도 안되어 때로 고향에 돌아가 있게 될 때도 있었으나 죽어도 총부를 떠날 수 없다 하시며 그대로 생사고락을 같이 할 뿐이었습니다.

그처럼 온갖 간고한 형극의 길이었으나 한 마음 변함없이 열반하는 그날까지 성(()) 그 마음으로 일관하였으니 신의는 관고금(()()())하심이요, 경륜은 통우주(()()())하신 심법이었습니다. 열반시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법문을 거듭하시었고 일체를 공사에 맡긴다 하신 그 심법이 바로 성산 그대로 이십니다. 경에 「성자(()())는 천지도야(()()()())요, 성지자(()()())는 인지도야(()()()())」라 하였는데 이도 또한 ()이요 ()이신 성산 은법 형님을 일컫는 법문이십니다.

「나를 보고자 할진댄 따로 찾지 말고 일원상을 모시어라. 또 그것만해서는 안된다. 제중하는 것이 나를 보는 것이다」 하시었으니 이는 출가위의 거룩한 심법입니다.

선종법사님께서는 형산, 성산 두 분을 한산과 습득에 비유하여 그 성자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두 분은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께 남김없이 다 바치시어 위법망구 위공망사에 조금이라도 흠과 부끄러움이 있을까 봐 그 효심을 잊으신 바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분은 이소성대, 사무여한, 살신성인하는 교단 창립 정신의 표본으로 대표되시었고 그것은 전체신심 전체서원 전체공심으로 나타나 오늘의 교단을 있게 하시었습니다. 성산종사이시여! 하늘의 ()과 땅의 ()이 성산의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성이 되시어 제생의세 성불제중의 화신으로 시방 일가 사생일신이 된 이 회상 일원불도량(()()()()())의 불탑신(()()())이 되셨으니 길이 길이 받들고 모실 거룩한 성자의 일생이셨습니다.

성산종사이시여! 다음 법구로써 영생을 더욱 약속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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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기72년 4월29일>

성산종사 입장식

수도인이 도가에 입문하여 네 가지로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보통 범부 중생들은 그 도장을 사사(()())나 적은 인정(()())에다 찍습니다.

첫째는 땅에다 도장을 찍고 가기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묻혀서 그 도장이 한 시간이나 하루가 지나가면 없어진다. 이렇게 진흙에 찍은 도장은 중생들이 찍는 도장입니다. 또 밥 한 그릇에 술 한 잔에 도장을 찍어 버립니다. 둘째는 조금 나은 이는 물에다 도장을 찍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면 물 전체가 흔들려서 오래가지 못합니다. 돈이나 재물에다 도장을 찍습니다.

셋째는 좀 큰 어른들은 허공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연각 보살들이 찍는 도장이다. 스스로 조석으로 때때로 허공 법계에 서원 올리고 정성을 올린다. 주세 성자를 만나지 못해서 허공에다 도장을 찍습니다.

넷째는 마음에, 심법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진리를 깬 여의 자재한 부처님들이 찍는 도장입니다.

성산종사님께서는 60년 전 병인년에 이 회상에 오셔서 주세불이신 대종사님께 세세생생 심인(()())을 찍으셨기 때문에 1갑자 2갑자 3, 4, 5갑자 백천만 무량 갑자 선천 후천 수만 겁에 그 도장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산종사님은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과 삼세 제불제성과 전 동지에게 그 마음에, 심법에 도장을 찍으셨기 때문에 그 도장은 수만 겁을 가더라도 없어지지 않고 거름이 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거룩한 영겁 영생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도가의 4가지 즐거움이라는 것이 온통 내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는 스승을 만났을 때가 아주 제일 좋은 때입니다. 그런데 성산종사님은 그 기쁨을 맛보셨고 또 온통 다 전할 수 있는 동지와 제자를 만나야 되는데 성산종사님은 그 일이 해결 되었습니다. 또한 생사를 같이하고 고락을 같이하고 창자를 이을 수 있는 동지를 만나야 되는데 성산종사님은 회상 초창 몇십명 안 될 때 오셔서 지금 몇십만 몇백만의 동지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생사와 고락과 창자를 이을 수 있는 동지를 만났기 때문에 그 일생이 참 기뻤고 아무리 내가 바칠 수 있는 스승을 만나서 온통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다 남김없이 전할 수 있는 동지와 제자를 만나서 다 전했습니다.

특히 생사와 고락을 같이 할 수 있고 창자를 이을 수 있는 동지를 만났다 할지라도 자신이 마음 자리를 봐서 마음을 자유자재 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가는 것이 영겁에 큰 일이 되는데 성산종사님은 아주 그 자리에도 토가 떨어 졌습니다. 또한 이번 수위단 전원이 모여서 법위를 추천할 때 전원이 정식출가위로 사정했습니다. 지금 출가위로 오른 분이 한 단이 되는데 대개 그 분을 몰라서 한 두표씩 차질이 있었습니다. 이 어른은 전원이 사정했다고 하니 그 동안 공부 사업한 적공도 감사하지만 전원이 이 어른에게 사정을 했다는 것은 교단 만대 1갑자 2갑자 3, 4, 5 무량 갑자 일대겁 선천 후천에 다시 오실 때에 참 좋은 기연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인간으로서는 더할 수 없이 섭섭하지만 편히 가셨다가 한 마음 돌려서 오실 때 다음에는 여여자재한 그런 큰 부처님이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원기72년 4월29일>

성산법사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내가 생전에 직접 가서 뵈워야 하겠다. 24일 근산법사 종재식에 나가 뵙도록 하자.

성산법사는 출가위이시다. 위법망구 위공망사로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으셨다. 증산교의 조천자 회상에서 돈을 가마니로 가지고 다니는 재무 담당 책임자로 있다가 그 어머니와 형수 연원으로 대종사님을 뵈온 후 대종사님은 새로운 주세성자이시고 정법회상이라는 것을 숙겁의 인연 따라 깨달은 후 두 마음 없이 그 돈 가마니를 내던지고 대종사님 회상에 귀의하고 출가하였다. 그때의 총부는 가난하기가 무엇에 비할 수 없었는데 땅을 파고 수박과 박을 심어 직접 팔고 다니는 임원 생활을 하여도 돈을 가마니에 넣고 택시를 타고 다니던 과거를 두번 다시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일관하시었다.

또한 그 심성은 호 그대로 성(())이다. 중용에()()()()()()()()()()()()라」 하였는데 바로 성산법사를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형산법사와 성산법사의 사이는 한산과 습득과 같다고 선종법사님께서 말씀하시었다. 두 어른은 똑같다.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회상 창립기에 천신만고 함지사지를 당하며 오늘날의 이 교단을 만들고 키워 오신 교단 산 역사의 흔적을 생각한다면, 그 어른들의 거룩한 성자의 혼이 스며들지 아니 한데가 없으니 나는 생각할수록 그 정의가 더욱 깊어지고 마음 깊이 새겨지는구나. 만일 열반하시게 되면 숭산종사 때와 같이 바로 긴급 수위단회를 열어서 법위 투표를 하여 출가위로 받들어야 하겠다. <원기72년 4월22일>

성산법사 문병

「평생 위법망구 위공망사하신 어른이시며 신의는 고금을 통하고 경륜은 우주에 편만하셨다.

조천자 회상에서 간부로 있으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 회상의 주세성자이신 대종사님께 신의를 다하여 바치시고 위법망구 위공망사로 86의 평생을 일관하셨다. 우리 교단의 산 역사의 표준이시다.」 <원기72년 4월24일>

추모법회

내가 이 어른에 대해서 60년간 한 솥 밥을 먹고살아 온 그 세세곡절을 다 말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신의는 관고금(()()())하고 경륜은 편우주(()()())라. 선종법사님의 심회(()())를 읊으신 것인데 바로 그 심회가 성산법사님의 심회가 되었습니다.

스승에 대한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내가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 가운데 공공연히 치하를 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신의가 좀 희박하고, 동양에서는 신의가 죽었다고 하며 지금은 신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교황님의 이름은 요한과 바오로 두 스승님 이름을 따서 지었기에 참으로 위대한 분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산종사님 같이 선종법사님의 심법을 체 받기 위해서는 과거는 묻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오늘부터라도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신의의 심법을 가지고 산다면 신의는 관고금 할 것입니다. 신의가 박약한 사람은 살았어도 죽은 것이고 죽은 뒤에는 바로 육신과 같이 없어지고 맙니다.

성산종사님은 겸양하신 말씀으로 「제가 뭐 아는 것이 있습니까. 대종사님의 경륜을 실행할 따름입니다.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의 경륜을 내가 실행해 버리면 내 것이 됩니다」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윗 스승님의 경륜을 내가 실행하면 내 경륜이 되어 버립니다. 성산종사님의 심법이 만대의 심법입니다. 성산종사님은 86세를 살으셨지만 860년을 사신 것 보다 훨씬 낫고 또 앞으로도 참다운 심법을 가진 제자들과 동지들이 많기 때문에 이 어른이 돌아 가셨지만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신의는 관고금하고 경륜은 편우주하는 스승님의 심법을 체 받아야 하겠습니다.

선종법사님께서는 아침 새벽에 일어나 기원하시며 나는 세세 생생 대종사님 모시고 다니는 그 일 외는 아무 것도 없다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경륜이 선종법사님의 경륜이 되셨기 때문에 선종법사님께서 만대의 후계를 맡으셨고 또 성산종사님께서는 두 스승님의 경륜을 모셨기 때문에 출가위로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성산종사님과 선종법사님과 대종사님의 경륜을 소홀히 하지 말고 만대에 전할 것 같으면 잘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원기72년 4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