亨山 金洪哲 宗師 - 九人精神 再次興起

형산 김홍철 은법형(()()())님 영

대종사님께서 새 세상의 새 회상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기 위하여 숙겁에 이 세상을 드나드실 적에 김씨 가문과 특별한 숙연을 맺으셨던 지라 부친이신 팔산 대봉도님과 모친이신 심타원 신정랑 희사님은 대종사님의 대각을 전후하여 직접 시봉을 다하는 동시에 회상 창립의 제자로서 알아주는 이 별로 없을 그 당시 첫째로 따르고 첫째로 알아모심으로써 대종사님을 제일 기쁘게 하셨으니 거룩한 큰 보필을 다하셨습니다.

또한 은법형께서도 어린 소년 시절이었으나 부모님들과 같이 최초의 시봉을 다했으니 영생의 자랑이고 행복입니다. 대종사님께서 방언 공사를 하실 때 공양을 올리려 어머님 심타원 신정랑 희사님과 같이 밤중에 시냇물을 건너다 생명을 잃을 뻔한 큰 위기를 넘기고 조실에 가니 대종사님께서 오늘을 기념하여 법문을 해주시겠다 하시고 중용의 대의를 밝혀 주시면서 유교의 도맥을 새롭게 천명해 주신 바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 회상이 중성(()())이 공회(()())하고 집군성이대성(()()()()()())하는 일원 불사(()()()())의 시초이셨으니 이때에 이미 형산 은법형님을 위법망구 위공망사할 대법기(()()())임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아울러 두 부자님께서는 대종사님께서 숙겁에 세우셨던 대서원과 경륜과 포부 그리고 회상과 세계의 전망을 담은 한시의 가사를 수필하여 대종경 전망품에 수록하게 하였으니 그 공덕과 복록이 한량없을 것입니다. 형산 은법형님께서는 팔산 대봉도님 출가 이후 장남으로서 가사를 책임져야 할 처지였으나 일도양단(()()()())의 대결심과 서원으로 출가하여 혈기왕성한 청년 시절 3년간 사가에 가지 아니하고 대종사님을 모시고 익산 총부 건설 때 주경야독의 대정진을 하였었습니다. 이는 부설 거사의 우오추간(()()()())의 대정진과 버금가는 교단적인 불공이었습니다.

또한 신흥교당 10년 교화중 30여명의 전무출신을 배출시켜 오늘의 교단 동량들이 되게 하였고, 오늘의 영광 교구가 있게 하였으며 선종법사님 모시고 일정 말의 그 간난 했던 시기와 8.15 해방 이후의 혼란, 6.25전란을 겪으며 성산종사와 더불어 영산성지에서 2, 30년간 교대로 근속하시면서 위법망구 위공망사로 이 회상을 사수하고 보호하면서 교단 청년들을 지켜 주시어 뒷날 그 청년들이 교단에 크게 기여하게 하시었으니 큰 일을 하시었습니다. 또한 온타원법사를 비롯하여 자녀들을 교단 혈통 법자들로 이어 나오게 하여 대종사님께 큰 보은을 하셨습니다.

형산 은법형님이시여!

은법형님께서 제2차 방언공사의 총책으로 임하여 그 추진 정신을 스스로 「구인정신 재차 흥기(()()()())」라 하시었기에 나는 「사부도덕(()()()()) 선양무궁(()()()())케 하소서」 한 바 있었고 선종법사님께서는 「천난만난(()()()())을 당하더라도 그곳에서 죽어 돌아오지 말라」고 하시었던 바 은법형님께서는 「예」 대답한 그 마음으로 혈심 혈성을 다하여 그야말로 구인선진님들의 사무여한의 대정신을 재현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방언공사를 추진할 때 팔산 대봉도님과 같이 터진 언답 구멍을 몸으로 막아 위기를 방지했었고 천지를 움직여 조수 왕래의 변화를 일으키므로써 공사의 마무리를 무난히 완공시킨 일과 허가가 나오게 되는 과정에서 기적도 있었으니 이는 은법형님의 구천에 사무치는 신성과 사무여한의 대서원과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그 도력에 천지가 감동하여 보답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패기에 찬 그 기상 활달한 그 성품 대중에게 항상 대의와 법통을 세워 주셨던 법형님이 초창기 진력으로 얻은 병환으로 보지 못하게 된 수년간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였습니다.

형산 은법형님의 일생은 시방일가 사생일신으로 교단이 내 집, 내 몸, 내 일, 내 살림으로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이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출가위의 빛나고 거룩한 성자의 나타남 이였습니다.

은법형님이시여! 형산이라 형통하시고 형통하심이여 상하좌우, 사방팔방으로 막힘이 없이 넓게 넓게 터져서 두루 통하고 화하며 바치고 바쳐서 세상을 구원하고 중생을 제도하시었습니다.

은법형님이시여! 다음 법구로 영로를 위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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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기72년 12월18일>

형산종사 영전에

우임금이 9년 치산치수하면서 집 앞을 세번 지나면서 들어 가시지 않은 공심과 충성 그리고 백익 정승이 그 일을 담당한 과보로 9년간 부림을 받는 과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 실적으로 우왕이 삼황(()())으로 만대 추앙을 받았다.

대종사님께서는 1차 방언시 무수한 생령을 희생하게 되어 3개월 전부터 천도 기도를 올리셨으나 어쩔 수 없는 정업으로 10년간 발제(()())로 무수한 고생을 하시었다.

그리고 선종법사님께서는 대종사님과 이 회상에 보은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총재로 후군 대장이 되시고 형산법사를 선군대장을 시켰다. 형산법사께서 「방언 공사의 큰 사업을 감당하기 어렵겠습니다 하고 못 가겠다」고 하니 「그러면 가서 죽어라」 하시어 그 말씀을 받들고 두 마음 없이 사무여한으로 혈성을 다 하였다.

그러나 3년간 공사중 무수한 희생을 시키게 되었다. 선종법사님께서 「대산도 가서 같이 합력하여 중군 역할을 하라」 하셨다. 형산 법사는 그 과보로 지금까지 10년간 정업의 과보를 받으시고 나도 그 과보인 줄은 모르겠으나 20여년간 종기가 나서 1년 이상을 가시를 박고 빼고 하였다. 그런데 원평 구릿골 평화 할머니가 「1, 2년 사이에 그 정업이 녹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지금 많이 효과를 보고 있다. 선종법사님께서도 정업으로 9년 동안 고생하시었다.

형산법사의 2차 방언 공사 실적과 공덕은 교단과 함께 길이 빛날 역사인데 언답을 막으므로써 360명 불자가 탄생하였다. 앞으로도 수없이 나올 것이다.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께서 「칠산바다가 앞으로 개척되어 중공과 통래(()())할 것이다」 하시고 「앞으로 백수가 도청 소재지가 될 것이다」 하시고 교당을 마련하라 하시어 형산법사가 그 뜻을 받들어 2천 여평의 교당 부지를 구입했다. 그런데 몇 달전 김제 방 군수와 전북 홍석표 지사가 와서 「서해 바다 새만금방조제를 막으면 큰 군이 두개 나오는데 부산직할시 보다도 크다」고 말하면서 「이는 국가 대산업으로 꼭 되어야 합니다」 하더라. 한국은 서해 개발이 되는 때에 무궁무진한 대운이 열린다고 선종법사님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정부에서 공식 발표를 하였다. 우리가 50년 전에 군산에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갔는데 선종법사님께서 「7, 80년 전에 큰 선각자 한 분이 나오시어 ()()()() ()()()() ()()()()가 된다」고 예언하시었다. 앞으로 한국의 장래는 이로서 크게 대운이 열릴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1차 방언 후 3개월간 기도를 올리셨으며, 선종법사님께서도 2차 방언시 2년간 기도를 올리도록 지시하셨다. 형산법사는 그 과보로 지금까지 10년간 정업을 행하셨으니 우리가 기도를 올리는 정성을 받쳐야 도리에 맞을 것이다. 이번 형산법사의 2차 방언의 거룩한 불사는 영원히 추모하고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께 다시 한번 보은의 정성을 올려야 될 것이다. <원기72년 12월15일>

임시 수위단회의(형산법사 법위사정)

우리가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세세생생 모시고 서로 이 회상을 받들고 나가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 뜻하신 바가 있어서 이 어른이 이렇게 가시게 되니 우리 원로 수위단원 노법사님들과 동고동락하였던 일들이 더욱 간절히 생각납니다. 대종사님 열반하시고 선종법사님 열반하신 뒤에 우리 회상이 이렇게 되어 나가는 것은 우리가 합심합력해서 함께 노력해 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원로 수위단 되시는 형산 김홍철법사께서 병환중에 계시었지만 병환 중에 계신 것만도 다행이다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열반에 드시니 저희들이 박복함을 무어라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 당신이 가실 일도 있고 하실 일도 있으니까 가셨지마는 마음이 아픕니다.

이 어른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으시고 공(())을 위해서 사(())를 잊으신 것만은 대종사님이나 선종법사님이나 천지신명이 다 알으시고 계실 터이니, 이 어른 법위에 대해서 우리가 만대를 받들고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대종사님께서 구타원님과 금강산을 다녀오신 뒤에()()()()()하니 ()()()()()이라」 하시고, 「금강산에다 종교 연합 본부를 세워야 하겠다」 하신 말씀을 받들고 우리 선종법사님께서 당신 회갑 기념으로 인해서 그 뜻을 밝혔고, 우리가 55주년 행사 때 그 뜻을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또 미국의 가드 박사 일본의 중요한 지도자들과 한국의 각 종교 대표자들이 모여서 그 뜻을 다짐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그 뜻만 갖고 받들어야 되겠다 했는데 이번에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총재로부터 민정당 수석비서관 김용갑씨를 보내서 이 U.R.에 대하여 찬동을 하였습니다. 박 대통령에게도 전한 바가 있습니다. 신직수 정보부장과 전주 대공실장이 와서 「원불교에서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하여 나는 「우리 대종사님께서나 선종법사님께서 무엇을 먼저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원불교의 일은 국가나 세계의 일이 되기 때문에 와서 보시고 무엇을 도와 드려야겠다고 판단하여 도와주면 몰라도 우리가 먼저 무엇을 도와 주십시요 하지는 않는다」 하였더니 그러시면 「대종사님이나 선종법사님께서 나라를 위해서 해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해서 「하나에서 열 백까지 국민 훈련을 해서 국가를 갱신하여야 하겠습니다」 했더니 바로 그 이듬해 새마을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모든 예법을 혁신시켜 신정 예법을 밝혀 주시었고 새 생활 운동을 전개하여 주시었다고 하면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우리 예전을 보내드렸더니 바로 국민 가정의례 준칙을 발표하였다. 지금 정부에서도 U.R.에 대하여 관심이 대단히 큽니다. 앞으로 U.R.을 대종사님 탄생 100주년에 창립 총회를 하고 U.R. 평화상 제도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일본의 니와노선생이 앞으로 세계평화자 회의는 한국의 원불교에서 해야 되겠다는 것을 말하였고 강원용 목사도 6대종교자 대표를 모여 놓고 이 일은 원불교에서 해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총재께서도 이 U.R.에 대하여 적극 협력하기로 한바 있으며 이번 대통령 후보 다섯 분에게도 말씀을 드렸더니 모두 찬성을 하고 U.R. 창립 취지에 싸인을 하였습니다. 문산 총장님이 임시 의장이 되어 구체적으로 법제화하여야 하겠습니다. 형산법사님 법위 문제와 U.R. 문제와 개헌 문제를 철저히 검토하여 대종사님을 대신해서 삼세 제불제성을 대신해서 천지공사로 하게 되면 열반에 드신 형산법사님께 보은이 되고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과 삼세 제불제성님께 보은이 되는 것입니다. <원기72년 12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