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님 탄생백주년기념 대보은 성업봉찬 기간을 앞두고 교단적으로 할 일이 많아 천산 대봉도가 맡을 일이 꼭 있어 회생하리라 믿었는데 열반 소식을 접하니 참으로 놀랍고 안타깝기 그지없네. 그러나 다른 일 있어 대종사님 곁에 간 것으로 알고 안심하고 있네.
주세불께서 새 회상을 열기 전후하여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신명을 다하여 전신전수(全信全受)하고 전탈전여(全奪全與)하는 법연들을 찾으시고 법맥이 만대에 계승하도록 하여 주시는 동시에 또 계속해서 이어 나올 혈심혈성으로 호법봉도(護法奉道)하는 불보살들이 배출되도록 성심을 다 하시는 일인데 천산대봉도는 바로 그 사람이었네.
천산대봉도는 선종법사님의 뜻을 받들어 십여명의 여학생을 데리고 보육원 한 쪽 창고를 얻어 원광여자상업고등학교를 창설하여 오늘날 사천여명이 되는 원여중고, 원여상고로 육성 발전시켜 전라북도에서는 1, 2위의 큰 학교가 되었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여학교가 되었으니 교단의 자랑이며 큰 일하였네. 오늘의 여학교를 이룩할 때의 과정을 살핀다면 최초 발족할 때는 6.25 직후인지라 총부를 비롯해 전교도의 간난하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때라, 단 한 푼도 학교 설립에 지원할 수 없는 상태였었는데, 천산대봉도는 선종법사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자산으로 삼아서 손과 발로 피와 땀으로 하나하나 이루어 나갔고, 후에 역전 중앙대학교 이리 분교를 인수할 때에 선종법사님께서 무조건 인수하도록 하라 하시니 교단적으로는 너무도 상상할 수 없고 꿈을 꾸어 볼 수 없는 일이었는데 온갖 수난과 수모를 감수하며 끝까지 이루어 냈었고 내가 지금의 장소로 한번 더 옮겨 보라 했을 때 역시 생명과 자산으로 알고 일대 결단을 결행했었네.
이런 일을 추진하고 이루어 낼 때에 암담하고 막막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애타서 피가 마르고 잠이 안 올 때도 또한 수가 없었을 것이니, 그 지난 일의 정곡을 누가 알겠는가? 이루어 낸 공덕은 티끌 모아 태산인 격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일이었네. 오늘의 원여중고, 원여상고는 천산대봉도의 피와 땀의 결정체요. 살이요. 마음이네.
특히 교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대종사님의 혜명(慧命)을 전하는 전무출신 백오십여명을 배출하는데 힘써 교단과 대종사님께 대효(大孝)하는 큰공을 이뤘네.
또한 천산 대봉도는 서울회관 복구에 대합력한 일을 누가 잊겠느냐. 서울회관 사건으로 교단 전체가 수년 동안 위기에 처해 앞뒤가 막힐 정도로 대수난을 겪을 때 앞장서 합력 함으로써 그 큰불을 끄는 원동력 역할을 하였었네.
그리고 해외 교화에 대합력한 일로 미주 교화와 특히 일본 교화에 서원을 세우고 합력한 일은 해외 교화 합력자로서 그 공덕 길이 빛날 것이네.
천산대봉도는 재가와 출가로 47개 성상을 혈심혈성을 다하여 호법봉도하였으니 새 세상 새 역사를 창조하는 불보살로서 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불사를 다 하였으니 장하고 거룩한 일생이었네.
천산이여! 천산이여!
하늘같이 높은 마음 땅같이 너른 마음
화합하고 합력하여 티끌 모아 태산 무에서 유를 만들었네.
많은 인재 배출하여 나라와 교단의 동량으로 키우고 일원대도 받들어 큰 공덕 이루었네.
불보살들의 영생 생활 철학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 공을 쌓아서 내외로 주한 바가 없이 거래를 하며 능히 고집하는 마음이 없기에 일원의 체성에 합해서 통달무애하고 또한 무상 무념의 보시로 마음에 사사와 계교가 없으므로 일원의 위력을 얻어 자유자재하는 것이니 최후 일념 더욱 챙겨 큰 서원 세우기 바라며 다음 법구로 영로를 거듭 밝히는 바이네.
無我無不我 無家無不家
是則眞家鄕 聖聖佛佛居 <원기74년 10월13일>
천산 추모담
「본인이 잘 살고 갔지마는 부처님같이 자유자재하는 힘은 얻지 못했으므로 최후의 순간을 가족들이 기도를 잘 올려라. 하루 세번 못하면 아침저녁으로 영주 7번 성주 7번을 100일 아니 일생을 그렇게 모셔야 하지만 특히 49일 동안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가 자유자재의 힘이 있어 간 사람 같으면 모르지만 그 힘을 얻지 못했으므로 대종사님께서도 「사진을 찍을 때 최후의 찰깍 할 때 눈을 감았다든지 다른 짓을 해 버리면 사진을 버리게 된다」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49일은 부처님도 관계된 분에 대해서는 최대의 정성을 다한다. 캐나다, 미국, 서울 등 어디에 있든지 바쁜 시대이지만 저녁에만 이라도 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정성을 들여 키우는 것은 뼈가 녹아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 되도록 100일까지 시간 있는 대로하라.
나는 어머님이 열반하실 때는 뵈었지만 아버님의 열반을 뵙지 못했으므로 지금까지 심고 시간에 대종사님 선종법사님은 마음의 부모로 모시고 육신의 부모는 그 어른들이므로 내가 보은을 하려면 기도를 해야 하겠다 하여서 심고를 올린다. 천산 대봉도도 내가 조석으로 심고 정성을 올리겠다.
<원기74년 10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