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에 솟는 그 대신성은 삼세의 법연이고 시방에 다북차 두루한 그 대서원은 공주일레라.
그 신성 그 서원은 법랑(法囊)이 되어 도화만개(道花滿開)할 것이니 대종사님 기뻐하심 여기에 더함이 어디 있으리까? 구타원종사님! 대종사님 마음쓰심 세세곡절 살피시고 모시어 언제나 기쁨 다해 드린 효제(孝弟)가 아니었던가요. 나와는 출가 동기로 한 마음, 한 뜻, 한 삶으로 하루가 다르게 정의가 더하며 영생의 법연과 신성을 깊이 깊이 두텁게 두텁게 더해 왔었는데 대종사탄생백주년기념대회를 몇 달 앞두고 앞에 가시니 누구보고 받들어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너무나 허탈하고 아쉬우며 섭섭할 뿐입니다. 그러나 백주년의 새해를 맞고 떠나시니 한편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을 모시고 익산총부 건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생사 고락을 같이하며 위공망사 위법망구로 일대사를 받든 일을 생각하니 우리들만이 알고 하늘땅만이 아는 일이 너무 많아 무엇이라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선종법사님을 기다리고 찾으시어 만나신 후 「내가 만나려던 사람을 만났으니 우리의 대사는 이제 결정 났다」 하시고 숙세에 약조했던 그 제자를 기다리는 이유와 만나는 의의를 아주 중대하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음을 법문으로 크게 알려 주셨는데 구타원종사님은 부처님 당시 수달장자같이, 공자님 문하에 자공과 같이 이 회상 초창기에 기다리며 찾아 만났으니 교단 만대에 역사가 이를 거룩하게 증명하고 길이길이 찬양하고도 남을 영산회상에 약조였습니다.
그러지 아니하고서는 어찌 암울하고 참담한 국운의 쇠퇴기에 혼돈과 무질서로 본말이 전도되고 정사 구별이 어려웁고 반상 차별이 심할 때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적 여성으로, 명문 집안의 여성으로, 궁중 시독관의 여성으로서 그 당시 농촌의 한 일우에서 일어난 종교 지도자인 청년 대종사님을 만나 뵙고 전탈전신(全奪全信)의 귀의를 하였으니 이는 숙세의 약조가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불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타원종사님은 문벌도 학벌도 명예도 반상도 다 뛰어 넘은 일대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 후 66개 성상 지금까지 교단사에 구타원종사님의 정성과 심혈이 하나하나 안 미친 바 없었으니 참으로 위대하고 장한 공덕의 업적이고 빛나고 거룩한 성자의 생애였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열반하시던 그날 나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나는 한 번도 잊지 아니하고 구타원종사님과 보은의 마음을 연하였기에 오늘 이 영전에 그 말씀을 드리며 대종사님 성령 전에 큰힘 밀어 주신데 대한 감사함을 고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나와는 시일이 갈수록 더욱 깊게 동기생 법형제 사제지의로 그 대의를 일관하셨기에 나 또한 그 뜻을 마음 깊이 새겨서 영생 영겁 그 책임을 다 하겠으니 그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대종사님께서 구타원종사님께 내려 주셨던 법문처럼 거래각도 무궁화하시고 보보일체 대성경할 것을 기원하며 구타원종사께서 「憂喜本無種이나 自心隨境起로다. 若無心與境이면 無憂亦無喜일러라」를 읊으셨던 이 법구에 의지해서 거래하시어 대불과 성취할 것을 거듭 기원하며 당부하는 바입니다.
<원기76년 1월4일>
생사가 둘이 아닌 대열반에 드신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과 삼세 제불제성님을 닮아 가기 위한 우리 불제자들은 생사와 인과에 대한 진리를 각파해야 될 것입니다.
生來에 生不生하고 死去에 死不死라
不生亦不死요 不死亦不生입니다.
가고 옴도 없고 죽고 남도 없는 대열반의 원적무별한 저 일원상의 본향에 常住自在하는 대법력을 익후소서.
<원기58년 1월26일 내장사에서>
大九長菩薩 마하살 구타원님
대종사님 법문 구비구비 수록한 필적
모든 사업 곳곳마다 끼치신 手態
정신, 육신, 물질 다 바치신 전무출신 정신
하늘 九天위에 솟고 솟고
땅 九長밑에 길이길이 永世無窮 다시 永世
無窮慧 닦고 無量福 쌓으셔서
福慧兩足 具足한 큰 佛果 이루소서.
<원기58년 11월11일 내장사에서>
나를 잊었으매 나 아님이 없었으며
집이 없었으매 집 아님이 없었으니
그 하늘같은 큰 신심 땅같은 큰 공심 간단없는 그 정성
하늘이 길고 땅이 넓어서 구천 위에 솟았도다.
대종사 성령께서는 굽어살피시리
一甲子로 비롯해서 二甲子의 오늘까지
법주머니의 그 구슬로 빛나고 빛나
회상을 키우고 북돋아서 나라와 세계에 전하였으니
그 출가 無我無不我요 無家無不家로다.
永天永地 功德海 무량하도다. <원기71년 2월9일>
구타원종사 영전에(영모묘원)
「대각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자리를 크게 깼다는 것인데 여래자리는 한말로 말할 것 같으면 내이불래(來而不來)라. 와도 오는 바가 없고, 거이불거(去而不去)라. 가도 가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를 마지막 영결하시는 구타원종사여. 생사는 거래니 해탈하고 다시 준비하는 공부를 하시고 인과는 여수(與受)니 감수불보(甘受不報)하고 다시 종은(種恩)해서 사대선성(四大先聖)과 삼대말성(三大末聖)과 새 회상의 주세불이신 대종사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받으시는 선종법사님 뒤를 이어서 세세생생 큰 공부 큰 사업을 하시어 큰 법기가 되시기를 마지막 비는 바입니다.
구타원종사께서는 최후를 잘 마치시었다 하니 열반에 드시는 그 순간까지 수양력을 흐트러짐 없이 온전하게 입적하시었다. 그리고 생전에 내가 내린 법문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한히 감사하고 신성으로 받들었다 하니 참으로 장한 어른이시었다. 열반하던 날 오전에는 장산이 다녀왔고, 열반하시던 날 저녁은 만성이가 모셨다 하니 이 또한 나로서는 섭섭함이 덜하다.
근래에 예타원에게 구타원종사께서 「당신들은 좋겠소. 대산종법사님을 아버님이라고 또는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데 나는 그러 지를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라고 하시며 퍽 부러워 하셨다 한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그 마음을 내 마음 삼아서 영생을 연하였다. 그리고 그 분의 그 큰 신성, 그 한결같은 신성 다시 크게 발견하게 되었다. 성산, 형산종사께서 선종법사님께 낱없이 바치시고 나에게도 그와 같으셨다. 이것이 교단의 생명이 아니겠느냐 복조있는 교단이니라.」 <원기76년 1월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