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원 영가는 금년 4월에 총부에 와 성탑 참배도 하고, 나와 면접도 하고 해서 그때 이미 떠나는 인사를 마치셨다. 그때 다녀간 것이 법연을 더욱 더해지는 큰 기연이 된 것 같다. 관타원이 이전부터 훌륭한 뜻을 가지고 공부 잘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나 그때 말 들어보니 아주 헌거롭더라. 노인이 되면 대개 노욕이 발동되어 재물나, 명예나, 가정이나, 자녀에 대하여 애착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주 헌거로웠다. 관타원이 나에게 「자녀들로 말하면 저희들 장성해서 활산(活産)하여 부자는 아니로되 밥은 먹고 살으니 하나 걸릴 것 없고, 또 나는 나이가 이만큼 되었으니 이 나이에 애착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가는 길만 남아 있는데, 그 가는 길을 어떻게 가야 잘 갈 것인가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모습이 대종사님 법문에 의하여 한가로이 어디 다녀올 분같이 아주 헌거로운 태도이었다. 또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셨었다. 마치 다른 노인 일 말하듯이 하였었다.
수도를 해서 생사 해탈을 준비했다는 분도 갈 때가 가까우면 약간 수욕(壽慾)이 있을 수 있다. 또 가정이나 자녀들에게도 애착이 있게 된다.
그런데 관타원은 일체 끊어 버리고 아주 헌거롭더라. 그래서 큰 공부하시는 분이다 생각되어 내 마음 기뻤었다. 그때 그 마음 가지고 가시면 되나, 내 오늘 그 영로를 밝혀 걸림 없는 거래를 부탁합니다.
최후에는 착심을 다 풀어 버려야 하는데 그 첫째가 원착(怨着)이다. 일생 살다 보면 미워하고 싫은 사람이 있었을 터이니 그 모든 얽힌 끈들을 남김없이 다 끊어 버리고 떠나야 한다. 둘째는 탐착(貪着)이다. 재화(財貨)나, 육신이나, 가정에 대하여 탐착이 없을 수 없다. 이것도 다 끊어 버리고 떠나야 한다.
셋째는 애착(愛着)이다. 자녀나, 육신이나, 가정에 애착이 있다. 그러니 이것을 끊어 버리면 천지허공(天地虛空)이 되어 버리고 불보살이 되는 것이다. 그때 다 알아들으셨다고 하였다. 또 병환 중에서 안정된 마음으로 병고를 평안히 넘기시어 자녀들에게 괴로움을 조금도 안주고 가셨다. 그 동안 큰 해탈과 큰 견성은 설사 못 했다 하더라도 관타원이 가지고 있는 그 큰 신력(信力)에 의해서 해탈을 한 것이고 큰 자리를 본 것이다.
그리고 관타원이 이 교단에 평생 공헌한 바가 아주 크다. 내가 항상 잊지 아니하고 염원하는 분이 있는 데, 삼산종사와 도산, 구타원 대봉도님들이시다.
삼산종사는 독자가 열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는 대종사님께서 다녀오라는 말씀이 계셨으나 「인연 다해 갔으니 제가 이제 간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지금 선중(禪中)이니 다 마치고 가겠습니다」 하고 마칠 때까지 안 가셨다. 그때 선방 교무(禪房敎務)이었다. 우리 교단이 만대를 통해 잘 되어 나가는 것이 다 이런 불보살들이 계시므로 되는 것이다. 또 구타원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수를 다하지 못하고 당신 앞에 불행히 떠나갔으나, 지금 80노령에도 다 초월하고 계신다.
사람인지라 어찌 그 인정이 없으리요 마는 해탈로 교단 일에 한결같이 정성을 다 하고 계신다. 이분들 모두 만대 교단사에 빛나는 일을 하셨다.
도산 대봉도님은 가난한 교단 초창에 출가하여 전무출신하시다 상처(喪妻)하셨을 때 그 어린 자녀들을 사촌(四寸)에게 맡기고 홀연히 떠나와 기초 작업을 하셨다. 이 일은 난행중난행(難行中難行)이다.
대종사님께서 평생 독신 생활하기도 쉽고 또 누구 죽을 때 해탈도 하기 쉬우나 도산이 한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법문하여 주셨고, 선법사님과 주산종사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런 분이 계시니 우리 교단이 어찌 안되겠느냐고 하셨다. 이는 다 교단 만대에 빛나는 역사가 될 것이다.
관타원이 정토회원으로 그 밑받침을 다 하셨다. 전생에 다 서원 세우고 오셨다 간 것이다. 교단사에 길이 빛날 몇 분들을 내가 생각해 볼 때 삼산종사님이나 구타원, 도산 대봉도님들이 다 그런 환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 때의 역사를 남기고 후인들을 가르치고 제도하기 위해서 한 바탕 연극을 하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어른들을 교단적으로 숭배해야 한다.
그 동안에 자녀들을 기르느라 당신이 전문적으로 공부를 못 하셨기 때문에 큰 법력과 큰길을 못 얻으신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 이 자리를 당해서 옛날을 회고하고 이 어른의 앞길에 큰 법력을 모아 드리기 위해서 심력을 모아 드리는데, 최후에는 관타원으로 말하든지 자녀로 말하든지 동지로 말하든지, 지극히 사심 없이 심고 올리고 서원하는 만큼 이 어른에게 좋은 일이 더 없으니 우리가 최후에는 신앙을 통해서 최후의 서원을 크게 세우는 것이 영생에 싹이 되는 것이고 거름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사홍서원(四弘誓願)을 하셨던 것이다.
중생이 무변(無邊)하니 서원도(誓願度)라. 일체 세계 중생을 보실 때에 갓이 없으니 다 제도하시기로 맹세한다. 그런데 우리가 늘 생각하더라도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 자녀의 그 잘한 것을 기뻐하고 잘못한 것을 슬퍼하고 아끼는 그 마음 갖기가 참 어렵더라. 그러면 바로 여래다. 부처님이다. 나의 자녀 나의 부모 형제같이 모든 중생에 대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끼는 그 서원을 이 자리에서 세우게 되면 이 어른이 내생에는 부처가 되신다. 그 서원이 제일 큰 서원이 된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살아가자니 다생겁래(多生劫來)에 우리의 습관이 많다. 그러므로 번뇌가 무궁무진하여 티끌과 같으니 그걸 다 끊기로 서원해야 되겠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우리가 평생을 닦아 가지고 이 번뇌를 그대로 남기고 보면 안된다. 작은 번뇌는 별 수 없다 하더라도 큰 번뇌를 두면 안된다. 우리가 그걸 끊기로 하면 본래 한 자리 원상(圓相)의 소식을 통해야 한다. 아무리 수행을 하고 계문을 지킨다 해도 이 한 소식을 통하지 못하고 보면 번뇌는 끊어지지 않고 다시 두터워 지는 것이다. 그러니 번뇌를 끊는 데에 더욱 서원을 세워야 될 것이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이 한량없는 것이다. 부처님 법문이나, 성경 현전(賢典)뿐 아니라, 천하가 성경 현전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 배우는데 서원을 세워야 하겠다. 그러나 그것도 한 소식을 통하지 못하고 보면 모래를 세는 것과 같아서 참으로 큰 법문은 배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종사님께서 전해 주신 일원상의 정전심인(正傳心印), 이 한 소식을 통하는 것이 하룻날에 천지의 법문을 배울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법문이 한정 없으나 배우기를 서원하고 배워야 될 것이다.
또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이 세상에 모든 도가 많이 있지만 불도 같은 위없는 법은 없으니 그 불도를 성취하도록 서원해야 한다. 불도를 성취한다는 것이, 바로 한 소식 통하는 것이 불도다.
그 자리는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고 감도 없고 옴도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위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한 소식을 통하셔서 내생에는 현생 자녀나 교단이나 세계를 구원 할 수 있는 성자가 되실 것을 빌면서, 이 인연으로 인해서 이 법을 청취하는 이 시간이라도 사홍서원을 다 갖출 수 있는 불보살이 되길 빌면서, 또 대봉도님을 받들어서 평생을 자녀를 위해서 활동한 그 정성에 보은이 되기 위해 나도 정성을 드리겠다.
<원기62년 6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