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에서 심었던 그 신근(信根) 거래간에 불법 받들어 불사를 쉬지 아니 하였기에 금생에 와서는 일찍이 경성 불교 여자청년회 회장직을 맡아 그 사명을 다하고 이 나라 개화기에 명성(明誠) 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서 타자녀교육에 앞장섰습니다.
또한 만해 한용운 등 여러 큰스님들과 교류하며 불교 중흥에 크게 노력하던 중 숙겁의 법연따라 그 스승 다시 찾아 대종사님을 새 세상의 주세불로 크게 받들어 두 마음 없이 수십개 성상 봉법법자(奉法法子)로서 효성을 다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특히 희사 정신이 남달라 사대독자 치산을 이 회상에 출가시켰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기(正氣)로 호법을 하였으며, 오랜 병석에서도 좌우에서 병 낫기 위해 딴말을 하면 「내가 믿는 스승 대종사님 외에 또 누구를 믿느냐」 하고 일호의 동요도 없이 그 대의를 세우시어 후진들의 큰 사표가 되시었습니다.
경타원 정관음행선생 영가시여!
일찍이 영산 회상에서 바쳤던 그 신성 오늘에 이어 전무출신으로써 크게 받들었으니 청정 일념으로 평안히 가셨다 평안히 오시어 영천영지 무궁토록 봉도 봉법(奉道奉法)하여 대불과 성취하소서. <원기65년 2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