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불제성들이 제생의세의 대경륜과 포부를 펴실 때 믿고 따르며 알뜰히 받드는 진실한 제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 뜻을 펴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창 제자들이 스승님을 받들어 회상의 기반을 확립해 드리는 것은 회상의 바탕과 기본으로서 그 공덕 역사에 길이 기록되어 찬양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정타원법사께서는 바로 그런 훌륭한 제자로서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익산총부를 건설하고 교화를 시작하실 즈음에 옛 회상에서 약속했던 인연들을 동서남북을 통하여 찾으시고 그곳에 교화의 기초를 세우실 때 서울에 맨 먼저 대종사님을 맞이하시고 옛 회상의 인연 깊은 제자들을 만나실 수 있게 온갖 어려움을 불구하고 법석을 마련해 드리며 머무시게 해 드리어 구타원대봉도, 융타원법사 등을 찾게 해서 회상 초창에 계획하셨던 큰 뜻을 기쁘게 펴실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그 당시의 교세는 아주 미약하여 세상에서 아무도 몰라 볼 때이며, 또한 그 당시의 사회가 개화기의 혼미와 혼란이 계속되고 있을 때이므로 정타원정사와 같이 여성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상당한 재산가로서 이 회상에 귀의하기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정타원정사께서는 일타원 박사시화(一陀圓 朴四時華) 정사를 이모로 박공명선(朴孔明善)선생을 모친으로 입교 대종사님이 새 세상의 주세성자이심을 알아 뵙고 두 마음 없이 귀의하여 은족(恩族) 결의를 맺고 61개 성상을 초지일관하여 그 신성과 그 서원 다 바치고 다 키워 그대로 거진출진하였습니다.
그 당시 서울서 알아 뵙고 귀의한다는 것은 희귀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정타원정사를 만나신 후 크게 기뻐하시고 위안을 받으셨고 깊어 가는 신성과 커 가는 그 서원을 보시고 대인의 금도를 지닌 군자이므로 그 법명을 성원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2호 재가 교역자로서 발령받아 교화 일선에서 활동도 했었습니다. 과연 정타원정사는 일생 대인의 심법으로 살았습니다. 어떤 순역 경계에도 동요함이 없었고 추호도 원망함이 없이 이은보원(以恩報怨)하는 사표를 보이셨습니다. 정사님은 서울 최초 교당인 창신동교당과 돈암교당의 창립주이셨고, 또한 부군 진 박사의 병원을 임실교당에 희사했었고, 또한 부군 진 박사가 관계에 관여 할 때에 일정하의 교단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정사의 일생은 초창 교단에 빛나는 큰 공덕을 쌓으셨습니다.
편안히 가셨다, 편안히 다시 돌아 올 것을 간절히 부탁하면서 다음 법구로 영로를 위로하는 바입니다.
成佛濟衆 濟生醫世
聖聖相連 繼承大道
願之大願 十方一家
<원기69년 12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