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本法無法이요 법본법무법
無法法亦法이로다 무법법역법
今付無法時에 금부무법시
法法何曾法고 법법하증법
법은 본래 무법에 법하였고
무법이란 법도 또한 법이로다.
이제 무법을 부촉할 때에
법을 법하려 하니 일찍이 무엇을 법할꼬.
대종사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본래에 한 법이라고 이름지을 것도 없지마는 하열한 근기를 위하사 한 법을 일렀으나 그 한 법도 참 법은 아니니 이 게송의 참뜻을 깨치면 천만 경전을 다 볼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다. 도가에서 무엇을 받았니 받았니 해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고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말로 마음으로 받아 다시 전함이다. 그래서 정법 천년은 구전심수가 되고 상법 시대는 글과 경전에 의지하고 계법 시대는 형식과 의식에 의지한다. 옛날 스님들은 법문 하나 들으러 몇 달을 걸어서 중국에 가지 않았느냐.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 법문 듣고 공부하니 얼마나 좋으냐. 주세성자도 당신이 나와서 주세불(主世佛)이라고 하지 못한다. 지낸 뒤에 후래인이 주세불로 받드는 것이다. 법을 전할 때 과거에는 단전(單傳)으로 했기 때문에 싸움을 했다. 그러나 우리 회상은 공전(公傳)이다. 누구든지 공부하고 적공하고 정진하면 다 여래위(如來位)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당대에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종사님께서도 「너희들이 나를 몰라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천년 후에라도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나를 모른다고 내가 근심도 않고 좋아도 안한다」 하고 자주 말씀을 하셨다. 큰 성현은 몇 백년 지낸 뒤에야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