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明隱顯法하야 위명은현법
方說解脫理라 방설해탈리
於法心不證하니 어법심부증
無嗔亦無喜로다 무진역무희
은현 법을 밝히기 위해서
바야흐로 해탈의 이치를 설함이라.
법에 마음이 증명할 것 없나니
성냄도 없고 기쁨도 없도다.
진리를 깨쳐야 내 것이 된다. 예쁘다고 더 주는 바도 없고 밉다고 덜 주는 바도 없다. 깨달으면 진리를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양도 하지 않고 받는 것이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부처라고 할 때에 성리를 모르면 부처가 아니다.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귀하니 해도 깨치고 성리 단련하는 것처럼 급하고 귀한 일이 없다.
성리를 모르고 깨달았다 할 수 없고 깨닫지 못하면 부처는 아니다.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공부하였어도 아기다. 그러나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다만 깨닫고 못 깨친 그 차이다. 누구라고 해서 못 깬다는 것이 없고 누구라고 해서 다 깬다는 것 없다. 삽삼조사라고 해서 다 여래는 아니다.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두울 때에는 항마 자리도 제법(制法)을 한다 하셨다. 그러나 법을 세우기 때문에 대우는 여래같이 한다. 별수 없이 여래가 아닌데 여래 대우를 받으니 본인은 손해다. 그러나 위치가 그렇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
우리 공부인은 토굴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수하(肉身樹下) 단전(丹田) 토굴의 자성 토굴에 들어가서 자성불을 발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