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隨萬境轉하니 심수만경전
轉處實能幽니라 전처실능유
隨流認得性하니 수류인득성
無喜亦無憂로다 무희역무우
마음이 일만 경계에 궁굴려 따르니
궁구는 곳에 실로 능히 깊숙하더라.
흐르는 곳을 따라 성품을 얻을 줄 알면
기쁨도 없고 또 근심도 없더라.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 움직이나 일만 경계가 다 삼매의 경지라 일행삼매(一行三昧)요, 동정역순(動靜逆順)이 무비삼매(無非三昧)며 사상삼매(事上三昧)다. 이 지경에 이르면 마음이 나투는 곳마다 불리자성(不離自性)이라. 그 가운데에는 기쁨도 근심할 것도 없다.
기쁘기도 근심도 해야 되지만 능히 기쁨과 근심에 묶이지 않는다. 출가위는 무희무우 (無喜無憂)다. 바보같이 「집어 잡수시오」 한다. 여래위는 활용자재(活用自在)하는 경지로 능희능우(能喜能憂)하며 일체생령(一切生靈)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자리다.
우주를 볼 때 천지 지천 천지지(天地 地天 天地地), 지천 천지 지천천 (地天 天地 地天天)의 경지를 뚫어 봐야 한다. 그래야 한량없는 힘이 생기고, 수도의 힘이 생기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공부하는데 심사 를 모셔야 되고 심우를 가져야 된다. 심우가 열이 있으면 능한 바가 혼합되어 같이 커 나간다. 또 심계가 있어야 한다. 대종사님을 13년간 모시는데 법위(法位)에 대해서 해마다 말씀하셨다. 받들 때마다 심도가 다르고 새롭고 깊게 찔러 주시더라.
성리를 깨달으면 폭을 잡을 수가 없다. 공부하는데 성리를 깨달으면 기하 급수로 나간다. 비행기 탄 것과 같다 하나, 비행기 탄 것이 아니라 비추면 비추는 대로 간다.
성리의 표준이 「불리자성왈공(不離自性曰工)이요, 응용무념왈덕(應用無念曰德)이라」고 한 말씀이다.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을 가로되 공부요, 응용에 무념하는 것을 가로되 덕이라, 겸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