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門觀
무문관
存夜氣
존야기
性理大全
성리대전
六根門 開閉 規制 自由
육근문 개폐 규제 자유
動中靜 靜中動
동중정 정중동
握固冥心
악고명심
保任含蓄 默言安息
보임함축 묵언안식
緊紮穀道 腰骨竪立
긴찰곡도 요골수립
息妄現眞 水昇火降
식망현진 수승화강
대적광전이나 적멸궁전이나 공을 들여야 한다.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아 배꼽 밑이 나왔는가, 배꼽 위가 나왔는가 보아 배 꼽 밑이 부르면 단전 토굴이 살았다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도 단전이 툭 나오셨다. 억지로 단전을 부르게 하면 위하수가 되어 끌끌 거린다. 끌끌 하는 놈들은 선을 잘 못한 것이다. 이렇게 법문 하는데 조는 놈도 단전에 힘이 없 어서 그런다. 졸릴 때 단전에 턱 주하면 한 시간이고 열시간 이고 백시간이고 졸릴 염려가 없다. 아니 절대로 졸리지 않는 다. 단전에 공을 들여야 한다.
성태장양(聖胎長養) 이것을 도교에서는 영보도국(靈寶道局) 이라 했다. 이 영보도국에다 성태장양은 하지 않고 악태장양 을 하여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존야기로 저녁식사 후 2시간 정도 지나 밤 기운을 보존하여야 한다. 즉 공복시에 성태장양 을 1년, 10년, 20년, 100년 할 것 같으면 어려운 경계를 당할 때 일체의 고(苦)가 다 녹아 버리게 된다.
무문관(無門觀)
자성 금강을 불괴(不壞), 불매(不昧), 불염(不染)이라고 한 다. 무너지지 않고, 어둡지 않고,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 전 토굴 속에 들어야 한다. 부처님에게 더하지도 않고 우리에 게 덜하지도 않은 자성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셔져 버 리고 어두워져 버리고 물들어져 버린다. 그러기 때문에 단전 에 집어넣어 파손된 것이 다시 이어지고 어두운 것이 밝아지 고 물든 것이 닦아지도록 해야 한다.
빨래를 하이타이 물에 넣었다 내서 탈탈 털면 옷이 깨끗해 지듯이 이 단전 토굴에 넣었다 내면 깨끗해진다. 사람이 살다 보니까 자성이 다 파괴되고 어두워지고 물들어 버렸다. 우리 가 색안경을 쓰면 다른 것으로 보이듯이 전부 그런 것 같다. 43억 인류 중에 몇이나 안 그렇게 사는가 모르겠다.
자성에 돌아 와서 나는 일체 이 시간은 죽었다. 나란 존재 가 없다. 무아라, 나를 찾아보면 없다. 그러니 단전 토굴에 들 어야 하겠다. 명예에도 재색에도 다 초월해서 단전에 들어 한 시간만 하게 되면 하루, 십년, 이십년 한 것이 다 탈탈 털어 져 버린다. 다 잊어버린다.
그러니 자성의 불괴, 불매, 불염의 심경을 갖추어야 된다. 별스럽게 산다 해도 그 능력을 갖지 못하면 나중에 죽을 때 에 날 좀 잘 살게 해 달라고 빌어도 안된다. 이 공부를 생명 걸고 해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태하고 타성 있으면 안된다.
존야기(存夜氣)
적이조(寂而照)하고 조이적(照而寂)해야 한다. 적이조(寂而照)하지 못하면 진선(眞禪)이 아니고 조(照)하면서 적(寂)하지 못하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성성적적시(惺惺寂寂是)요 적적성 성시(寂寂惺惺是)라 그것이 최고 경지이다. 보통 수양인들이 한 곳에 기울어 버린다. 또 만뢰(萬 )가 구적(俱寂)한 자리를 기르는 것인데 이는 만물이 소리를 내는데 바람이 불면 소나 무는 쉬한다든지 다른 나무는 휘 한다든지 소리를 낸다. 그런 데 다 소리가 다르다. 만뢰가 구적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 니라, 우리 사람 가운데도 만물이 소리를 내듯이 마음 가운데 도 만 가지 생각이 나는데 다 다르다. 마음 나는 것이 이 사 람은 여기에 욕심이 끌리는 것이 있으면 저 사람은 저기에 끌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다 구적해 버렸다.
일만시비(一萬是非)가 공(空)하여 한 경지를 솟은 자리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49년 설법하시고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즉 일언 일구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셨다. 또한 「모태 중에서 중생 제도를 이미 마쳤다.」고 하셨다. 내가 괜 한 말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영산 회상에 염화미소다. 영산회상에서 꽃가지를 들었는데 가섭이 파안 미소를 지었다. 「가섭이 와서, 아! 그 말씀이 옳 습니다」 하고 웃었으므로 그 법을 전하여 주었다. 그러니 그 것이 최고의 경지이다.
적이조하고 조이적해서 성성적적 적적성성의 경지를 남에 게 말 못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 아는 것이다. 자기 혼자 그 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하지 그 경지를 자기가 해봐야 안다. 그러므로 맹자님께서도 난언야(難言也)라 말하기 어렵다. 나 같은 사람이 말하겠느냐 하셨다. 맹자님도 한 소식 통하셨다. 지대지강(至大至剛)이라.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해서 이 직 양이무해(以直養而無害)하면 곧은 것으로 길러 해하는 것이 없으면 즉색우천지지간(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곧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는 것이다. 감문(敢問) 하위호연지기(何謂浩然之氣)잇고 왈난야언(曰難也言)니라. 기위기야(其爲氣也) 지대 지강(至大至剛)하니 이직양이무해(以直養而無害) 즉색우천지 지간(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부처님만 선하시는 것도 아니고, 장자만 선하는 것이 아니 다. 유교도 최고의 경지에는 그게 존야기(存夜氣)이다. 너희 학생들도 라디오를 듣는다든지 T.V를 본다든지 시간을 정해 놓고 보아야지. 육근을 다 열고 정력을 쏟으면 빈 껍질이 된 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볼 것만 봤으면 한다. 내가 경계를 겪 어 본 것을 생각하면 첫번에 극복을 해야 한다.
오욕이나 일체 경계를 극복해야 한다. 눌러 버려야 한다. 그 다음에는 눌러 버리면 또 나오니 절제해야 한다. 그 절제 만 해서도 안되니 조절을 해야 된다. 살살 그놈 따라도 가면 서 하다가 최고의 경지에 가서는 중도, 내가 잡아 쓸 것은 잡 아 쓰고 안 쓸 것은 안 써 버리면 되는데 대개 60대나 70대 가 되면 금욕 생활해야 한다.
무문관하고 존야기해서 그런 경지를 한 번 솟아나야 하겠 다.
성리대전(性理大全)
예전에 성현들이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성 리가 똑같은 성리인데 부처님이라 해서 더 밝은 것이 없고 중생이라 해서 더 어두운 것이 없다. 우리는 지혜가 어둡기 때문에 무명이고, 부처님은 지혜가 밝기 때문에 밝은 것이다. 성품의 이치는 크고 온전한 것이다.
육근문 개폐 규제 자유(六根門 開閉 規制 自由)
우리 육근 문을 열 줄도 알고 닫을 줄도 알아야 한다. 육근 문에 검문소를 설치하여 제멋대로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들어와도 스톱, 나가도 스톱하여 자유 자재를 하면 그 자리가 정신수양의 최고가 된다.
동중정 정중동(動中靜 靜中動)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오면 그때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평생 공부 못한다. 1학년 때부터 공부 길을 잡아야 한다. 그 때는 안되더라도 그 때부터 매달려서 애쓴 사람은 결국 성공 을 하고 1학년 때 못하면 2학년, 3학년, 4학년 또 대학원 졸 업해서 하지하고 사는 사람 치고 내 50년을 겪어 봤어도 성 공하는 사람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잡으려고 매달려야 한다. 그러니 아침에는 정 (靜)하고 정(靜)해서 하루를 동(動)하는 것을 표준 삼아야 한 다. 그래서 한 달, 일 년, 몇 십 년하고 보면 나중에 큰 위력 을 얻게 되니 그날 그날을 방심해서는 안된다. 미룬 사람은 안된다.
악고명심(握固冥心)
유교, 불교가 다 비슷했다. 그러니 그 때는 표준이 말만 다 르지 선하는 표준을 다같이 하였다.
보임함축 묵언안식(保任含蓄 默言安息)
육조 혜능같은 최상근기도 16년간을 보임함축하고 또 묵언 안식하셨다. 16년간을 보임함축하고 묵언안식해서 육조가 되 었다. 육조를 부처님이라고 칭하여 그의 글을 「육조단경」이라 고 한다.
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한 생각 깬다는 것 은 누구는 못 깨느냐는 분발심으로 적공하여 깨달아서 보임 함축하고 묵언안식하는 공을 드렸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재승박덕(才勝薄德)해서 알고 나면 그것이 다 인줄 알아도 그 것 아니다. 다시 16년간 보임함축 묵언안식하는 것이 육조를 만든 것이다. 경은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기록하신 것으로 깨달아야만 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육조단경이라고 하 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