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계유 동선 중이다.
그 어느 날 밤 회화 시간을 이용하여 송 규 선생께서 한 감상을 발표하니 대요는 아래와 같다.
저는 우리의 공부가 승급되고 강급되는 원인에 대하여 몇 말씀을 하겠습니다.
이에 대하여 알기 쉽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이전 공자님 문정에 자하와 자공이란 두 제자가 있었는데, 자공이는 항상 공부나 행실이 자기만 못한 사람과 놀기 좋아하여 어느 방면으로든지 선생님이란 말 듣기를 즐겨하고 대우 받기를 원하며, 자하는 이와 반대로 공부나 행동이 자기보다 승한 사람과 놀기를 좋아하며 몸을 굽혀 묻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자족을 느끼는 바가 없이 항상 위로 올라가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자님께서 이 두 사람을 두고 예언하여 가라사대,
"자공이는 공부가 지금은 자하보다 승하다 하나, 항상 저만 못한 사람과 놀기를 좋아하고 선생님이란 말 듣기를 원하니, 공부가 날로 늘어가기는 고사하고 점점 못 해갈 징조요, 자하는 공부가 지금은 자공이만 못하다 하나, 항시 저의 웃사람과 놀기를 좋아하고 자족을 느끼는 바가 없이 몸을 굽히어 묻기를 즐겨하니, 그대로만 꾸준히 진행한다면 자하의 공부가 필경 자공이보다 승하리라."
하였는데, 그 후 두 사람이 과연 예언대로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범, 우리의 공부가 승급되고 강급되는 것도 다 이와 같나니 우리도 만일 공부를 하여 무엇이나 조금씩 알아지는 것으로써 거기에 만족을 느낀다든지 또는 나만 못한 사람과 놀기를 좋아하고 선생님 대우 받기를 즐겨하여 자공의 하는 행동을 취하고 보면 그 사람은 공부가 점점 강급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자족을 느끼는 바가 없이 몸을 굽혀 묻기를 좋아하고 공부나 행실이 항시 나보다 승한 선생님과 가까이 놀기를 즐겨하여 자하의 하는 행동을 모방하고 보면 그 사람의 공부는 매일 늘어 갈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의 공부가 승급되고 강급되는 원인이 자만심을 두고 안 두는 데와 법 높은 이상 선생님을 친근히 하고 안 하는 데에 있다 하겠습니다.
불시(不啻)라, 우리가 무슨 원을 세울 때에도 소소한 탐착심으로써 한정과 국한이 있는 원을 세우고 보면, 이러한 원은 결국 다할 날이 있고 달성하기가 쉬운지라, 이 세상 보통 범부들은 자기의 지극히 바라는 원을 달성하는 날은 자연 거기에 만족한 생각이 나서 이상의 더 좋은 것을 구할 마음이 없어지나니, 예를 들면, 일면의 면장이나 천석꾼 부자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참으로 면장이 되고 천석꾼 부자가 되는 날은 자연 여기에 만족한 생각이 나서 이상의 더 좋은 것을 구하지 않는 등의 일입니다.
그러나, 한정과 국한이 없는 광대한 원을 세우고 보면, 이러한 원은 달성하기도 용이하지 않고 다할 날이 없으므로, 한 때도 마음에 만족을 느끼는 바가 없이 항상 이상으로 더 구하려는 생각 뿐일지라, 이 사람은 설사 몇천 겁을 거래할지라도 항상 승급만 될 것이요, 강급은 안 될 것이니, 예를 들면, 견성 성불과 중생 제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중생 제도로 말할지라도 한정이 없고 다할 날이 없을 것이요, 성불을 하기로 할지라도 아무 때나 천만 지혜와 천만 행실이 구비하여 삼대력을 완전히 얻어야 할지라, 이 삼대력을 완전히 얻기로 하면 어찌 한 달 두 달에 다할 수 있으며 한 해 두 해에 다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이 사람은 한 때도 자만심을 낼 여유가 없이 항상 이상으로 더 구하려는 생각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에도 가득하면 손(損)을 당하고 겸손하면 유익함을 받는다 하였으니, 이 말은 우주 만물의 승급되고 강급되는 이치를 밝힌 말이올시다. 그런즉, 우리는 공부를 할 때 조금이라도 자만심을 내지 말고, 같은 원을 세우더라도 한정과 국한이 없는 원을 세워야만 영원히 세상에 강급은 되지 않고 승급만 되는 줄을 알아야겠습니다.
시창 19년 3월 3일 <회보> 10호 서 대원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