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상심(平常心)

옛날 어느 선사(()())의 말씀에 평상심이 곧 도라 하였다.

그런즉, 평상심이란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이것을 글자로써 해석해 본다면 평평하고 떳떳하다는 말씀이니, 평평하다는 것은 고하(()())의 계급과 물아(()())의 차별이 없는 곳을 이름이요, 떳떳하다는 것은 고금(()())의 간격과 유무(()())의 변환(()()()()()())이 끊어진 것을 이름이니, 이 평상심이란 말씀은 곧 우리의 본성을 가르킨 것이요, 우리의 본성은 곧 우주의 대도가 되는 것이다.

경(())에 말씀하시되 `평등한 성품 가운데에는 피차가 없다.`하셨고 노자(()())께서 말씀하시되 `도를 가히 도라 할진대는 떳떳한 도가 아니라.`하셨으니, 이 두 말씀도 또한 평상의 진리를 이르신 바라 누구나 물론하고 이 평상의 진리만 넉넉히 해득한다면 그는 곧 견성자(()()())이며 달도자(()()())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치가 원체 심수(()())하여 일조 일석에 그 진리를 다 해득하기가 어려울지니, 우리의 지혜 발전을 따라 차차 이해하려니와 설혹 그 진리는 다 깨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마음의 용처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능히 평상심을 실행할 수 있나니, 평상의 진리를 깨쳐서 점점 평상의 마음을 쓰는 것은 돈오 점수(()()()())라 할 것이요, 평상의 마음을 닦아서 점점 평상의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점수 돈오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돈점(()())이 선후가 없어서 혹은 먼저 알고 뒤에 닦는 자도 있고, 혹은 먼저 닦고 뒤에 아는 자도 있으니, 우리는 이 두 가지 공부를 병진하여 평상의 진리를 연구하는 동시에 또한 평상의 마음을 잘 운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즉, 평상심 운용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이름인가, 여기에 몇 가지 실례로써 해석해 보려한다.

어느 일이나 한 번 정당한 도에 입각한 이상에는 그 지키는 바 신의가 항상 여일함을 평상심이라 하나니, 만일 환경을 따라 마음이 더하고 감함이 있다면 이것은 평상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평상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 신념이 항상 환경에 초월하여 환영과 배척이 능히 마음을 더하고 감하게 못하며, 환란과 영화가 능히 마음을 변하고 옮기지 못하나니, 고금을 물론하고 대인 군자가 한 번 뜻을 정한 후에는 능히 천만 난경(()())을 돌파하고 심지어 생사 관문(()()()())에 당한다 할지라도 오직 태연 자약하여 조금도 요동하거나 외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나니, 이것은 그 신의에 나타난 평상심을 이름이요,

우리가 모든 대중을 상대하여 은의(()())를 서로 맺은 이상에는 그 교제의 정신이 항상 원만하고 순일함을 평상심이라 하나니, 만일 삿된 감정에 의하여 사랑하고 미워하는 변태성이 있다면 이것은 평상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평상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 정신이 능히 당파에 초연하고 증애에 안 끌려서 일을 당하여는 오직 공정을 주장하고 은혜를 베풀 때는 오직 무념을 주장하여, 여기는 이(())주고 저기는 해 주며 어느 때는 좋아하고 어느 때는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며 설혹 저 피은자(()()())가 배은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은혜 베풀 때 마음을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나니, 고인의 말씀에 군자의 교제는 담담하기가 물맛 같고 소인의 교제는 달기가 단술 다는 것이 그 물맛은 변함이 없고 단술 맛은 변함이 있는 것을 지적하여 오직 변함이 없는 물같은 마음을 쓰라는 것이니, 이것은 그 교제에 나타난 평상심을 이름이요,

우리가 세상에 처하여 빈부의 환경을 당할 때에는 그 응하는 감정이 항상 담박함을 평상심이라 하나니, 만일 빈부를 따라 마음이 높아지고 좌축(()())된 바 있다면 이것은 평상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평상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 태도가 항상 평탄하여 빈(())하여도 빈한 데에 구구한 바가 없고 부하여도 부한 데에 음탕함이 없으며, 금의옥식(()()()())을 할지라도 외면에 교긍(()())의 빛이 보이지 아니하고, 추의악식(()()()())을 할지라도 내심에 부끄러운 생각이 없게 되나니, 옛날 순 임금께서 산에 밭 갈고 하빈(()())에 질그릇 구우실 때에는 그 자족(()())한 태도가 평생을 오직 거기에 마칠 것같이 하셨고, 천자(()())가 되시사 사해(()())의 부(())함과 백관의 봉공(()())을 받을 때에는 자만의 빛이 없어서 본래 그런 것같이 하셨다 하니, 이것은 빈부에 나타난 평상심을 이름이요,

우리가 세상에 출신(()())하여 안위(()())의 모든 경우를 대할때에는 그 가지는 정신이 오직 전일(()())함을 평상심이라 하나니, 만일 안위를 따라 마음이 정(())하고 난(())한 바가 있다면 이것은 평상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평상심을 가지는 사람은 편안할 때에도 항상 조심하는 대중을 놓지 아니하고 위급한 때에도 항상 규모, 절도(()())를 범하지 아니하여, 한거(()())에 있으나 난중(()())에 처하나 그 견립 부동(()()()())하고 유유자적(()()()())한 정신이 조금도 변개(()())되지 않나니, 옛날 공자께서 진채지액(()()()())을 당할 때에 7일 절량(()())이 되었으되 그 회중(()())이 아주 평온하여 소호(()())도 불평의 기분이 없고 도리어 청아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였다 하니, 이것은 안위에 나타난 평상심을 이른 것이다.

이상에 말한 바는 대략 평상심을 운용하는 조건 해석이요, 만일 강령적으로써 말한다면, 어느 곳에 있으나 어느 때를 당하나 항상 일심을 놓지 않는 것이 또한 평상심을 운용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공부인이 만약 평상의 진리를 깨칠 때에는 능히 생사 고락에 해탈하는 묘법을 얻을 것이요, 평상의 마음을 운용할 때에는 능히 성인 군자의 실행을 나타내게 될 것이니, 평상심이 곧 도라 하는 것이 어찌 적절한 법어가 아니랴.

시창 22년 <회보> 39호